뽕잎을 누에만 먹는다는 편견은 버려

양잠을 소득산업으로 일군 총각 이준기씨

2006-06-16     보은신문
뼈도 없는 하얀 벌레가 구불구불하게 기어다닌다. 누에를 보고 징그럽다고 소름 돋는다고 하지 않을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소리를 지르고 도망가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보은읍 어암리 보은 토종 누에농장주 이준기(26)씨는 보통사람들이 징그럽다고 만지지도 못하는 누에를 볼로 쓰다듬으며 아끼고 보호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대박을 안겨주는 보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이 누에를 애완용으로 일반인에게 분양까지 하고 있다. 애완용이 처음 강아지에서 시작해 고양이, 뱀, 이구아나 등 보통사람들이 혐오스런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까지 확대되고 있지만 누에를 애완용으로 보급한다는 것은 매우 독특하다.

이같은 발상만으로도 그는 단순한 농사꾼이 아니다. 혈압과 혈당 조절로 인기가 높은 누에와 뽕잎을 가지고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을 쏟아내는 벤처농업인 아니 벤처 기업인 이준기씨를 소개한다.

■ 양잠산업 일군 벤처 기업인
26살의 총각 이준기씨가 양잠 벤처사업가로 변신한 것은 2002년 한국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 이대현(53, 보은 용암)씨가 하던 양잠업을 하면서 부터다.

과거 잠업단지였던 용암리에서 다른 농가는 다 폐업하고 이준기씨의 아버지만 양잠업을 할 정도로 그 옛날 건조누에를 만드는 등 나름대로 양잠업에 일가견이 있는 아버지를 뛰어넘어 이준기씨는 제품을 다양화 하고 상품을 고급화했다.

뽕밭 5000평을 경작해 100여평에 달하는 잠실에서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상자당 2만여마리가 들어있는 누에를 25상자씩 치는 이씨는 누에고치가 집을 짓기 전 누에고치를 동결시켜 가루나 환(알약)으로 제품화 했다.

여기까지는 아버지가 제품화했던 것과 같다. 이씨는 더 나아가 뽕잎국수나 뽕잎 수제비를 만드는데 이용되는 뽕잎 가루도 만들었다. 녹차와 같이 뽕잎 차도 만든다.

특히 뽕나무에는 농약을 치지 않아 친환경인데다 비타민과 각종 무기질이 다량 함유돼 요즘 코드에 딱 맞는 웰빙 기능성 제품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의 연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뽕잎을 이용한 청국장’이라는 아이디어로 올해 농촌진흥청의 농업인 개발과제에 채택돼 2900만원을 지원받아 현재 냄새나지 않는 기능성 청국장도 개발 중이다.

장사꾼이 장사를 잘해야 돈이 수중으로 떨어지듯이 농사꾼도 생산한 농산물을 잘 팔아야 지갑이 두둑해지는 법.

이씨도 애써 생산해놓은 제품이 제값에 팔릴 수 있도록 직거래와 주문판매는 물론 홈페이지(www.silkworm.co.kr)를 개설해 제품 홍보와 함께 전자 상거래까지 실시 유통의 다양화를 꾀했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해 소득원을 창출하는 이준기씨가 이렇게 해서 벌어들이는 돈이 연간 8000여만원에 달한다.

물론 생산비를 제하지 않는 조수입이지만 양잠업만으로 8000만원을 올리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전망이 꽤 괜찮은 농업인 셈이다.

■ 누에를 애완용으로(?)
겉보기엔 창고에 불과한 잠실은 기업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처럼 보은 토종누에농장 또한 다양한 제품을 쏟아내는 기업 농업의 산실이다.

또 어린 누에가 뽕잎을 먹으면서 자라는 과정, 누에고치가 집을 짓는 과정 등을 유치원생들이 직접 보게 하는 현장 체험 학습장이기도 하다.

그가 이 잠실에서 애완용 누에를 기르고 있다. 무릎을 칠 일이다. 어느 누가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누에를 애완용으로 만들어 팔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이준기씨는 자신이 양잠업에 뛰어들면서 부터 했다고 한다. 발상의 전환이라는 위력을 새삼 느끼게 한다.

주로 유치원에 납품하고 있는 애완용 새끼누에는 5마리를 기준으로 누에와 뽕잎을 자체 개발한 누에 사육용 종이상자에 담아 세트당 1만5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11월까지 판매가 가능한데 올해는 이미 판매를 완료했고 앞으로는 일반인에게 분양하는 것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마도 내년에는 애완용 주문이 훨씬 늘어날 것이란 전망을 가능케 했다.

■ 보은농업 미래의 보루
무조건 농사를 짓는 시대는 갔다. 농민들도 경영과 마케팅에 눈을 떠야 한다. 이준기씨는 눈을 뜬 것이다.

올해 1월 이미 한겨레 21에 한국의 농업을 지키는 독수리 5형제 중의 한 명으로 소개된 바 있는 이준기씨는 지난 2002년 한국농업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올해 4월 신 농업의 메카 막강한 강사진으로 유명한 충남 금산에 소재한 한국 농업벤처대학(학장 김동태 전 농림부장관)도 수료했다.

1년 과정이지만 ‘한국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서’, ‘신제품 개발 및 성공사례’, ‘그린 투어리즘’ 등 방대한 수업범위 속에서 전문 교수들로 부터 마케팅과 금융 및 경영 등 농업인으로서 자질을 높이는 교육을 수강했고 동료 수강생들로 부터 한국농업의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현장의 목소리도 들었다.

이씨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농업인의 길을 걸은 셈이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지만 이론으로 무장한 이씨는 현장에서 다르게 적용되는 이론까지 현장화시켰다.

과거 생산개념으로만 생각했던 농업을 ‘고객만족’이라는 개념을 더하고 경영과 마케팅을 접목시킨 벤처농업으로 무장한 것이다.

다 들 농업, 농촌에 희망이 없다고 들녘을 등지고 농업을 가업으로 물려주기를 꺼리는 부모세대의 우려를 씻고 당당히 보은농업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앞으로 뽕잎과 오디를 이용해 차와 술을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고 예쁜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이 희망인 이준기씨.

알토란 같이 단단하고 황금 들녘처럼 멋스런 농업, 기업 농업인이 되기 위해 처음은 미약하지만 앞으로 보은농업의 미래를 책임지고 이끄는 벤처기업인으로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