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들녘에서 어머니를 그립니다.
- 한 윤 숙(고향주부모임회장)
2006-04-28 보은신문
농촌으로 시집온 지 서른두번째 맞이 하는 봄인가 봅니다.
아침결에 살포시 뿌린 봄비로 온 들녘이 상큼한 빛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니
시집와서 처음 맞이하던 봄이나, 중년이 되어 맞이하는 봄이나 마음이 설레는 건 여전 하군요.
봄이 오는 소리...
하늘을 향해 연두빛 새순을 쏙쏙 내밀며 냇물 뚝의 달랭이가 봄바람에 몸짓을 하고 비단처럼 보드라운 새싹들이 따사로운 봄볕아래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피는 봄...
어머님이 그토록 좋아하시던 산동백꽃도 잔잔하고 샛노란 꽃잎으로 봄을 맞이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꽃샘추위를 이겨낸 진달래랑 싸리꽃이 꼭 다문 입을 활짝 열고 온산에 흐드러지게 피어오르곤 하지요.
어머니!
잔잔하게 피어나는 산동백 꽃잎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더욱 간절해 집니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자식을 바라보셨던 어머니 모습...
유난히 노오란 산동백 꽃잎을 좋아하셨던 어머니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해도 노란 산동백이랑 하얀 싸리꽃은 온산에 흐드러지게 피었었지요.
어머니란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저리고 뭉클해져 옵니다.
봄기운을 가슴에 가득 담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면 어느덧 어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그곳에 계십니다.
서울에서만 생활하던 어린 딸자식이 농촌으로 시집을 간다고 하니까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며 안쓰러워 하셨던 어머니 모습...
이제야 어머니 마음을 헤아릴 것 같습니다.
명치끝이 아리고 마음이 시리도록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던 어린시절의 제가 이젠 그 어머니의 자리에 섰습니다.
어느덧 훌쩍 커서 결혼을 앞둔 아이들을 보니 더더욱 어머니 생각이 간절해 집니다.
유난히 작은 꽃잎을 좋아하셨지만 마음만은 항상 커다란 바다를 이루셨다는 것을 이제야 알것 같은 딸자식이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가만히 속삭여봅니다.
따가운 봄볕아래 논두렁을 거닐며 어머니를 불러봅니다.
진달래가 활짝 핀 산길을 걸으며 어머니를 불러봅니다.
하이얀 싸리꽃이 활짝 핀 들길을 거닐며 어머니를 불러봅니다.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리운 마음 가득 담아 봄하늘에 외쳐 봅니다.
어머니!
매년 이맘때가 되면 꼭 찾아 뵙겠노라 다짐하면서도 늘 찾아 뵙지 못했습니다.
이제 죄송하단 말은 하지 않으렵니다.
어머니!
이제 더이상 자식들 걱정으로 애절한 마음 갖지 마시고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이 아름답게 바뀌는 그곳에서 행복하게 계십시오.
한결같은 사랑으로 저희 사남매를 키우셨던 어머니의 그 사랑의 씨앗으로 저희들은 예쁜꽃처럼, 커다란 나무처럼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 성실함으로 이웃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아주 어릴적 어머니를 따라 비오는 날 시골 방앗간을 지나던 일이 생각나네요.
왕겨가 비에 젖어 흥건해 있는 길을 지나갈 수가 없어 까치발을 들고 울던 일이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서울 새댁이 시골로 내려와 겪었던 숱한 사연들은 아련한 추억으로 물들었고, 풋풋한 흙내음과 두엄 냄새가 향기로움으로 와닿는 중년의 아낙이 되어 시들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계신 그곳에도 매년 이맘때면 산동백과 싸리꽃이 흐드러지게 피겠지요?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아주 소중한 보석같은 마음으로 보고싶은 어머니를 불러봅니다.
목청껏 다시 한번 불러봅니다.
그리운 어머니!
이천육년 사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