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부면 벽지리
2006-04-14 김춘미
벽지리의 첫인상은 그렇게 시작됐다.
주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동네가 잘 들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볕이 잘 드는 남향에 마을 뒤로는 해발이 400고지에 가까운 국사봉이 마을을 든든히 지켜주고 마을 앞에는 100년 이상 된 멋들어진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있는 숲이 떡 버티고 있는데 그것이 어찌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밖에도 숲의 안쪽에 있다하여 ‘숲안’이 변한 수반(들)과 큰 소나무가 외따로 있어 외솔들(외들) 또는 속리산 천황봉 물이 삼거리에서 내려와 그 물을 대는 논이라는 바깥속리들(외속리들) 등 들녘이 넓게 펼쳐져 고즈넉한 경치를 자아낸다.
전에는 130호가 넘게 생활했던 벽지리는 마을이 대양리, 고승리 다음으로 탄부면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벽지리의 중심이 되는 원벽지와 벽지 서쪽에 있는 마을로 차씨가 살았다는 차골(차동)이 있다.
75호 2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에는 제일 먼저 터를 잡은 가평 이씨가 20호, 그 다음에 들어온 남원 양씨가 15호 남아 있다고 한다.
마을 봉사자로는 김대식(54) 이장과 박재복(68) 노인회장, 전병순(58) 부녀회장, 권상목(53) 새마을 지도자가 있다.
¤ 마을일에 적극적인 주민성
마을 취재를 하는 동안 만난 주민들에게서 ‘마을일에 참 적극적이구나’하는 인상을 받았다.
출향인과 지역 주민들이 기부하는 성금이 1년이면 150∼200여 만원에 달하며 겨울철 마을에 주민들이 기탁한 쌀만해도 3가마나 된다고 한다.
벽지리 주민들은 해마다 효도관광과 선진지 견학을 간다. 한우마을 같은 선진지 견학의 경우 버스가 3대나 갈 정도로 주민들이 적극적이다. 그런 걸 통해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울 뿐만 아니라 주민 화합을 다지는 좋은 기회로 삼고 있다.
1년에 한번 출향인을 포함한 45명의 청년회(겸 상조회) 회원들이 경로잔치를 마련하는 등 출향인들의 애향심도 높아 마을에 노래방기계와 텔레비전, 냉장고 등도 기증했다고 한다.
벽지리에는 젊은이들이 벼농사 외에 오이, 방울토마토, 수박 등 시설채소에 주력하고 있다. 마을 경지면적으로는 논이 24만평, 밭이 약 4만5000평에 이른다고 한다.
마을에는 영아가 2명, 유아가 5명, 초등학생이 7명 정도로 그래도 마을에서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벽지리의 최고령자는 96세로 90이상인 주민이 5명이라고 한다. 이들이 전반적으로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어 김대식 이장은 그것도 마을의 복이라고 말했다.
벽지리 앞 도로변 유휴부지에 조성된 무궁화 공원에는 각종 꽃들을 식재해 그곳을 지나는 운전자들뿐만 아니라 벽지리 주민들의 눈과 마음까지도 즐겁게 한다.
36명으로 구성된 부녀회원들은 직접 꽃길 조성에 나서는 등 주민들 스스로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보기에도 좋고 정서적으로도 좋다며 관리에 소홀함이 없는 면의 행정처리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부녀회원들은 과수나 시설채소 기타 일손이 필요한 농가에 합동으로 일을 해주고 벌은 수익금으로 기금 마련을 해나간다고 한다. 그렇게 모은 기금은 독거노인 같은 동네 어려운 분들에게 김장을 담궈 나눠주는 등 좋은 일에도 보람 있게 쓰이고 있다.
후덕하고 인심 좋은 전병순 부녀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의 단합심과 열의가 대단한 듯 하다.
함께 뭔가를 이루어가는 동료나 이웃이 있다는 게 그들에게 많은 덕을 낳고 삶의 활력이 되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하는 참 좋은 것이었으면 한다.
그것이 참 좋은 것이면 조금 나쁜 게 있더라도 그것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 찬샘 약수와 소나무 숲이 있는 곳
국사봉 아래에는 ‘찬샘’이라고 부르는 옹달샘이 있다.
조선 중엽 피부병을 앓던 한 사람이 이 물로 목욕을 한 뒤 병을 고쳤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약수로 알려져 있어 아직까지 멀리 타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오며, 아기 분유 타는 데 쓰려고 인근 지역에서 물을 뜨러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벽지리 마을 앞을 지키는 외들의 소나무 숲이 옛날에는 울창해서 초등학교 시절 그곳으로 소풍을 오기도 했었다고 한다.
3년 전에는 폭설로 나무가 부러지고 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어 주민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숲 면적에 비해 현존하는 나무가 적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보은군 사업의 일환인 ‘생명의 숲’조성 계획에 임한리(탄부), 구병리(내속), 금굴리(보은읍)는 선정되고 벽지리는 누락되고 말았다.
주민들은 지금이라도 군에서 숲을 관리해주길 희망하고 있다. 그냥 이 상태로 방치해 둘 경우 더 큰 훼손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기준에 미달돼 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과일농사도 보면 실한 건 팔고 모나고 작은 건 즙을 내거나 다른 가공품을 만들어 수입을 올린다. 그로 인해 아무리 쓸모 없어 보이는 것도 귀중하게 다루게 되는 것이다.
정해진 퍼센트 안에 들지 못했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나름의 필요성을 찾아내어 가치를 창출할 수는 없는 것일까. 군의 작은 관심 하나가 또 하나의 생명의 숲을 만들 수도 있다.
현재 외들의 소나무들은 가지치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 푸른 연못이 있는 마을
벽지리는 푸를 벽(碧)자 못 지(池)자를 써서 탄생한 이름이다. 그것은 마을 앞에 푸르고 큰 연못이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한 25년 전쯤 연못 소유가 군으로 이관되고, 관리하는 사람도 특별히 없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제 모습을 잃어갔다. 지금은 깊게 패인 자리만 남아 연못이 있었다는 걸 짐작만 할 뿐 풀이 무성하고 메마른 자리를 보면 기분까지 씁쓸해진다. 그걸 매일 봐야하는 주민들의 마음은 더 안 좋을 것이다.
더군다나 오래 전부터 연못을 살리길 희망해온 주민들이다. 번번이 그 바램이 무산되긴 했으나 연못이 그렇게 있는 한 주민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벽지리가 왜 벽지리인가. ‘푸른 못이 있어 벽지라 했기 때문에 우리 마을에는 꼭 저 연못이 있어야 된다’고 강조하는 마을 주민의 말에 힘을 실어본다.
주민들의 바램은 준설작업과 정화작업을 거쳐 연못을 깨끗이 하고 연꽃을 심거나 석축으로 예쁘게 가꿔 바로 옆에 있는 마을 회관 주변과 함께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못의 일부(250평)를 매입해 마을 회관을 설립하고 그 앞에는 정자와 운동기구가 비치된 소공원을 꾸며 놓았다. 푸른 물이 출렁이는 연못을 볼 수 있다면 한여름 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정자 아래 모인 주민들의 피로도 시원하게 풀리지 않을까.
잠시 일지라도 군의 지도자를 꿈꾸고 도지사를 꿈꾸고 국가 원수를 꿈꿔본다. 이유는 나라면 뭐든 척척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어쩌면 이것이 그 자리에 있어보지 않은 나의 착각이며 오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그랬을 것이다. ‘나’라면 분명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의 그런 생각이 착각이나 오만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 앞으로의 숙원사업
벽지리의 숙원 사업으로 주민들은 농로 포장을 들었다. 농로 포장이 너무 미흡해 비가 올 때 경운기나 차를 끌고 가면 바퀴가 빠지는 등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 한다.
몇 해전부터 요청을 해온 상태지만 아직까지 처리되지 않고 있어 주민들이 답답해하고 있었다.
또 하나 수도관 교체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주민들의 간절한 바램이다.
주민들 말에 의하면 수도관을 개설한 지가 한 50여 된 걸로 알고 있는데, 너무 오래돼서 파손이 심해 누수 되는 곳이 많다고 한다. 누수로 인해 수량이 줄고, 가뭄이라도 들면 물의 양이 딸려 높은 지대의 주민들은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많은 불편을 감수하며 지낼 수밖에 없다.
물의 중요성이야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아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가장 기본적인 생활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벽지리 주민들의 애타는 심정을 헤아려줬으면 한다. 주민들의 요구가 수용돼 행정 기관에 대한 민원(民怨)이 지속되지 않길 바란다. 수도관 교체나 다른 지하수 개발을 말하는 주민들의 요구는 허영심도 아니고 과욕도 아니다. 그 마음 언제쯤이면 알아줄까?
벽지리 주민들의 근심, 걱정이 하나씩 하나씩 해소될 때 지도자에 대한 믿음과 신뢰도 쌓일 것이다. 정당한 요구와 약속 이행이 어렵지 않게 이뤄지는 날들이 매일매일 계속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