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언이비(食言而肥)

유선(회북고석 추신, 시조시인)

2000-05-13     보은신문
식언이비(食言而肥) 란 말이 있따. 곧 거짓말로 살이 찐다는 말이니, 사람이 신용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만 계속 지껄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에 맹무백이라는 대신이 살고 있었다. 맹부백은 항상 허튼소리를 잘하는 관계로 신용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노나라 애공은 그에 대해 항상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노애공은 오오라는 곳에서 여러 신하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그 연회에는 맹무백과 함께 곽중이라는 대신도 참석하였다. 그런데 몸집이 비대한 곽중은 노애공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늘 맹무잭으로 부터 신한 질시를 받고 있었다. 이 날도 맹무백은 곽중에게 술을 은근히 권하면서 다음과 같이 빈정거렸다.
"곽대신은 무엇을 그리도 많이 자셨기에 돼지같이 살이 찌셨소?" 이 말을 들은 노애공은, 맹무백을 흘겨보면서 대답하였다.

"늘 거짓말만 일삼는데, 왜 돼지같이 살이 안 찌겠소?" 이 말을 들은 맹무백은, 자기를 빗대놓고 하는 말인 것을 눈치채고 금방 얼굴을 붉히면서 제 자리에 안장 기가 죽어 아무 말도 못하였다는 고사에서 형성된 말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약속을 잘 지키는 결불식언(決不食言)이나, 요령없이 약속에 충실한 미생지신(尾生之信)이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상 최저인 57.2%라는 전국 투표율을 기록한 4월 13일 제 16대 총선 결과 227석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지역국에서는 한나라당이 112석, 민주당이 96석, 자민력이 12석, 민국당과 한국신당이 각각 1석, 무소속이 5석을 차지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영남권 5석중에서 64석을 차지했고, 민주당은 호남권 29석 중 공천자 25명을 모두 당선시켰으며, 무소속 4명도 친여쪽이어서, 이번 선거는 양당대결 속에 극심한 지역 몰표 현상이 나타났다.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는 46석의 전국구는 한나라당이 21명, 민주당이 19명, 자민련이 5명, 민국당이 115석, 자민련이 17석, 민국당이 2석, 신한국당이 1석, 무소속이 5석을 차지하여 야당인 한나라당이 제1당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16대 총선은 15대 총선보다 선거법 위반 건수가 무려 4배에 이르는 2834건에 달하는 등 혼탁한 가운데 치러져 후보자 서로간의 고소와 고발이 그치지 않는 가운데, 민주당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지역과 계층과 세대를 넘어서, 국민 대통합과 여·야 협력을 통한 상생의 정치를 구현하기 위하여 제1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초청하였다.

여·야 영수들은 숙의 끝에 11개항의 공동 발표문을 작성하여 국민들에게 발표하였다. 그 요지는 국민 대통합의 정치와 지역 갈등 해소 노력, 국정 안정 협력과 인위적 정계개편 배제, 남북 정상회담의 상호주의 원칙과 초당적 지지, 선서 후유증 조기 해결·부정선거 수사 공정처리, 국회 미래 전략위 설치와 정책 협의체 구성, 국회 정치 개혁 특위 구성, 민생 안전·국가 채무 감축·금융산업 진흥 노력, 인권법·통신비밀 보호법 조속 처리, 집단 이기주의적 불법행위 엄단, 산불·구제역 피해 조속 회복, 여·야 영수회담 수시 개최 등이다.

그 후 차례대로 여타 당의 총재들과도 거의 비슷한 내용이 약속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선거 유세 때 공약했던 사항이나, 여·야 영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 끝에 결정한 약속들이 잘 지켜져야 할 것이다. 여·야 를 막론하고 이 약속을 어기는 쪽은 식언이비가 안니겠는가? 유권자요 증인이 된 국민들은 그들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도록 눈을 크게 뜨고 의정활동을 지켜 볼 일이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