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속리면 서원리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웃음 꽃이 피는 마을
2006-01-13 김춘미
2006년 1월 1일 사람들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희망차게 손을 흔들며 병술년을 맞이했다. 시간을 실은 기차는 기적(汽笛)을 울리며 사람들에게 말한다. "꿈을 실으세요. 목표를 실으세요. 좋은 것만 실으세요. 저는 즐겁고 행복한 게 아니면 태우지 않는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간다. 무엇을 위해? 내 삶을 즐겁고 행복한 일로 채우기 위해. 창간 16주년 기념호이자 새해 첫 호를 맞아 마을탐방지를 어디로 할까 고심한 끝에 찾은 곳이 외속리면 서원리이다.
이유는 지난해 보은 읍내와 면소재지를 제외한 마을 중 신생아가 가장 많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수에 비하면 '가장'이란 단어를 쓰기가 조금은 무색할 수 있지만 그래도 농촌에서 한 마을에 아기가 3명이나 태어났다는 건 큰복이 아닐 수 없다.
서원리의 유명한 절경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기들은 조영주(42)씨 아들 조민우(2005,1,20일생)군, 권중건(43)씨 아들 권태승(2005,5,25일생)군, 김정식(28)씨 딸 김혜은(2005,5,11일생)양이다.
생명의 탄생은 희망을 의미한다. 농부는 땅에 씨앗을 뿌려 물과 거름을 주고 정성을 들여 열매를 맺게 한다. 새 생명인 아기는 씨앗이요, 물과 거름이요, 정성이다. 그래서 먼 훗날 이 어린 생명이 자라나 새로운 열매를 맺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기는 그 자체가 삶의 활력소다.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그냥 웃게 만든다. 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가!
인간은 나이를 먹고 몸이 늙으면 사람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노령화 인구가 많고 젊은이들이 없는 농촌에서 마을에 있는 아기는 내 손자, 손녀나 마찬가지다.
민우와 태승, 혜은이의 고향은 보은군 외속리면 서원리이다. 이것이 이들에게 자랑스런 이력이 되고 안 되고는 어른들의 몫이다.
서원리는 속리면 지역으로서 상현서원(象賢書院)이 있어 서원말 또는 서원이라 하였는데 1914년 안돌리(岸乭里)를 병합하여 서원리라 하고 속리면이 내속리면과 외속리면으로 분리되면서 1947년 외속리면에 편입되었다. 한때는‘속리면 소재지’였을 정도로 주민이 많았었다고 한다. 그 당시 면사무소가 있던 자리는 현재 공터로 남아 있다.
서원리에는 상현서원이 있는 서원리 으뜸마을인 서원말(원서원)과 해가 질 때 황금같이 누런 햇빛이 비친다는 황해동, 지형이 험하여 바위를 안고 돌아가는 마을 안돌이 이렇게 세 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서원말 21호 황해동 18호 안돌이 7호 그래서 총 46호 130여명의 주민이 생활하지만, 고시원이 있는 관계로 실제 거주자는 더 많다고 한다.
주민들 대부분이 본토박이인 서원리는 새로운 이웃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만 해도 타지에서 전입할 예정인 가구가 10호나 된다. 그전부터 주택 부지용 토지 매매가 꾸준히 있어왔으며 앞으로 그 자리에 더 많은 집들이 세워질 것이다.
이곳에는 젊은이도 많다. 농사에 주력하지는 않지만 구인리 농공단지 근무, 석공업, 자영업 등 고향에서 기반을 잡고 살아간다.
아기들의 울음소리와 마을을 오가는 주민수의 증가는 서원리에 밝은 미래와 희망이 있음을 말해준다. 2006년 한 해가 서원리 주민들에게는 진짜 신년(新年)이 될 것 같다.
마을 봉사자인 신국범 이장(52), 김명갑 노인회장(75), 황연식 부녀회장(55), 조영주 새마을지도자(42)는 작지만 복 받은 마을 서원리를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한다.외속리면 서원리외속리면 서원리34아이들의 울음소리에 웃음꽃이 피는 마을
# 정부인 소나무와 상현서원
천연기념물 제352호인 서원리 소나무는 지상 50㎝ 위에서 두 가지로 벌어진 원둥치에 속리산 입구에 서 있는 정이품송과 같이 마치 우산을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이는 나무로 수령은 600년 이상으로 추측되며, 수세가 왕성하다. 이 소나무는 정이품송이 곧추자란데 비해 원가지가 두 개로 갈라졌기 때문에 암소나무라 부르고 정이품송과 내외지간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주민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서원리 소나무를 정부인(貞夫人) 소나무라 부르고 있다.
마을명이 유래된 상현서원은 지방 유형문화재 제48호다. 조선시대 소수서원 다음으로 두 번째 사액서원인 상현서원은 1549년 (명종4년) 보은 현감 성제원이 이 고장 출신 기묘명현 김정의 위패를 삼년산성 내에 봉안하고 삼년성서원으로 창건하여 1610년 (광해군 2년)에 사액을 받았다. 1672년(현종 13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우고 대곡 성운(大谷 成運), 동주 성제원(東州 成悌元), 중봉 조헌(重峰 趙憲), 우암 송시열(尤庵 松時烈) 이렇게 4현의 위패를 추향하였다.
1871년(고종 8년) 서원철폐령으로 폐원될 때 강당은 보은 교사리에 위치한 보은 향교로 이전 명륜당이 되었다. 그후 1892년(고종 29년) 김세희 등이 옛터에 단을 만든 후 1896년(고종 33년) 김문희 등이 삼칸 띠집을 재건했으며 1949년에 어윤원 등이 지금의 건물로 고쳐 세운 것을 1971년 보수하였다.
# 특색 있는 마을로 발전 가능성
서원리는 주민들이 ‘뭐 먹고살까’ 걱정이 될 정도로 마을 주변에 농경지가 빈약하다. 그런 관계로 장안 일대에 토지를 소유해 농사를 짓고 있으며, 산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을 살려 버섯 채취를 주소득원으로 하는 가구가 몇 호 되고 2가구는 송이버섯을 전문적으로 채취한다고 한다. 그 외 여름철 피서객과 속리산 관광객을 상대로 한 상점들이 오래 전부터 운영되고 있다.
예전에는 소득작물로 콩, 고추 등을 재배하고 담배 같은 경우 2만평 넘게 경작을 했으나 지금은 경작 규모가 많이 작아졌다. 노령화 인구가 많고 농경지가 협소해도 농가마다 자급자족을 할 정도는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당시 '화전민 정리기간' 동안 황해동 앞산과 그 일대 화전민들을 전부 현재의 황해동으로 집단이주 시켜 몇 집밖에 없던 작은 마을이 큰 마을을 형성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다 외지로 나가고 지금까지 작은 마을로 유지돼 왔다.
서원말에 92년 1월 설립한 제일고시 학원은 한창때(94∼98년) 수강생이 540여명에 달했으며 전국 법원, 검찰직 합격자 중 85%를 이들이 차지하기도 했다. 그 명성을 듣고 모여든 학생들은 서원리 뿐 아니라 보은 시내 상권을 활발하게 가동시켰던 중요한 소비원이었다.
또 주민들이 학원생을 상대로 생계 수단을 전환하거나 확대하는 등 고시학원은 지역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경제논리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이익창출이 우선 시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2002년 6월 학원이 문을 닫았을 때 주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아무도 주민들의 생계를 염려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죄 없는 주민들이 피해자로 남는 일은 다시금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2년 만에 다시 개원한 학원은 현재 '고시촌'의 성격을 띠고 있다.
# 아름다운 자연 경관
서원계곡은 보은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여름철이면 전국 각지에서 피서객들이 모여 해마다 인산인해를 이룬다. 속리산 국립공원 내 제2의 화양이라고 부를 정도의 맑고 깨끗한 물로 삼가 저수지 밑에서부터 무지개 다리까지(4㎞)를 서원계곡이라 한다.
속리산 줄기와 구병산 줄기 사이에 좁은 협곡으로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있고 흐르는 물은 갖가지 형태의 기묘한 바위를 감싸며 급히 흐르다 웅덩이를 만들고 쉬었다 다시 흐르며 양쪽의 산줄기를 비춰주고 있어 옥수(玉水)철 극치를 이룬다.
서원계곡도 수질이 많이 오염됐었으나 98년 수해로 바닥에 쌓였던 오염 물질이 완전히 쓸려나가 지금은 상당히 깨끗해졌다고 한다. 지금은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농도 1급수에 해당하는 오염되지 않은 계류나 냇물에서만 서식하는 가재를 비롯해 다양한 민물고기를 볼 수 있다.
노인회, 소방대, 의용소방대, 및 주민이 자체적으로 쓰레기 줍기 등 계곡을 지키는 일에 참여하며 군에서도 사람을 별도로 고용해 관리를 한다.
천혜(天惠)의 보고(寶庫)란 말 그대로 하늘이 베풀어준 은혜이며 귀중한 보물이다. 이것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래서 그릇된 판단으로 청정지역의 본모습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내 집 장롱 안에 숨겨둔 금송아지를 잃어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지역이 가지고 있는 관광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현명한 판단력이 뒷받침될 때 ‘있는 것은 그대로, 없는 것은 만들어’새로운 공간을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공사중인 청원∼보은∼상주간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속리산 IC가 탄부면 상장리에 위치해 서원리에 속리산을 찾는 차량 통행이 더 많아질 전망이다. 그런 관계로 그 일대를 가꾸는데 좀더 관심 있는 행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원리는 충북 알프스 시발점인 곳이기도 하다. 충북에서 가장 아름답고 경관이 빼어난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43.9㎞의 등산 코스로 사람을 유혹하는 산수경관과 원시림 그대로 잘 보존된 구병산이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초창기에는 화장실, 주차장 등 기반시설이 열악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은 불편을 겪어야 했으며 등산로를 잘 닦아놓지 않아 ‘충북 알프스’란 영예로운 이름 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씩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을 마련해가고 있다.
한 상 푸짐하게 차려놓고 손님 맞을 준비를 끝낸 주인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느긋하게 기다릴 뿐이다.
손님 맞을 준비도 제대로 해놓지 않고 조급한 마음만 앞서 대대적인 홍보에만 치중하는 것은 좋은 재료를 갖고도 간을 못 맞춰 음식 맛을 망치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서원리의 숙원사업은 황해동 무접뿌리(황해동 남쪽에 있는 산)에 위치한 정수장까지 가는 길을 포장하는 것이다. 피뢰침을 했는데도 낙뢰를 자주 맞는 편이라 손볼 일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산 중턱에 있어 가는 길이 험하다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하루빨리 길이 포장돼 “암반 관정인데 물이 참 좋아”라고 자랑스레 말하는 주민들의 마음이 더 편해졌으면 한다.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 농작물을 수확하기 위해 사람들은 씨앗을 심는다.
갓난아기와 젊은이와 전입자들이 많은 서원리에는 희망의 씨앗이 심어지고 있다. 그 씨앗이 좋은 결실을 맺어 꽃이 만발하고 한해 농사가 풍년일 때처럼 주민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시간을 실은 기차는 오늘도 칙칙폭폭 열심히 달린다. 여러분은 무엇을 실으시겠습니까?
<새로쓰는 마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