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철위(十哲位)를 매안하고(3)

김 건 식(보은향교 전교)

2005-12-02     보은신문
7. 현실적 관점
현재 전국 234개 향교 현황을 살펴보면 대설위는 강릉향교와 전주향교 두곳뿐이다. 강능향교는 대성 전에 5성과 10철 그리고 송조 6현 등 21위를 봉안하고 동무에 우리나라 9현과 중국인 42현, 서무에 우리나라 9현과 중국인 41현등 115위를 봉안하여 모두 136위를 봉안하고 있는데 이는 매안 이전의 성균관의 133위 보다 3위가 많다.

이는 성균관에서 계성사에 봉안하였던 5성의 부위중 증자의 아버지 래무후 증정과 자사자의 아버지 사수후 공리를 동무에, 안자의 아버지 곡부후 안무요 서무에 봉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향교는 대성전에 5성과 10철 그리고 송조 6현을 봉안하고 양무에 우리나라 18현과 중국인 94현 중 평음후 유약, 승씨백 복승, 창려백 한유, 문정공 이동을 동무에 단부후 복불제, 광천백 동중서, 온국공 사무광을 서무에 봉안하여 46위에 계성사에 5위를 봉안하여 모두 51위를 봉안하고 있다. 전주향교지에 의하면 대설위인 위패를 1949년 성균관 예에 따라 99위를 매안하였다가 1952연에 다시 계성사에 5위를 봉안하고 양무에 중국인 94현 중 7현을 다시 봉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그 기준은 밝히지 않았다.

그 외 향교에서 10철위를 봉안하고 있는 향교는 우리 보은향교를 비롯하여 25개 향교뿐이다. 따라서 전국 각 향교에 예에 따라 10철을 매안함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8. 종향위 위차 조정
보은향교의 봉안 위차를 살펴보면 동종위는 도국공 주돈이, 난국공 정이 뒤에 홍유후 설총이하 우리나라 9현을 봉안하고 서종위에는 예국공정호, 휘국공 주희뒤에 문창후 최치원 이하 우리나라 9현을 봉안하고 있다.

이와 같은 위차는 사대주의의 관행인 것이다. 유학이 공부자와 4성에 의하여 확립되고 진시황의 폭거이후 1200여년 뒤 송조에 이르러 성리학이 대성하여 중국에 유학이 크게 발달되었다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유현이 없었다면 그것은 강 건너 불에 불과하였음은 자명한 사실이며 최치원과 설총은 유학에 뛰어난 분들이나 그것은 당나라 유학이었고 송나라의 주자학과는 연관이 없다. 송학을 처음으로 수입한 사람은 고려 말의 안향으로 유학에서는 그 분을 개척한 공로자로 종사하였고 정몽주는 이학의 조로 주자학설을 소개한 공로자로 종사한 것이다. 조선조에 들어와 김굉필을 비롯한 종사한 14현은 모두 송학인 성리학을 계승하고 전수한 분들이다.

처음으로 문묘에 우리나라 선현을 향사한 것은 고려 현종 11년인 1020년에 문창후 최치원을 종사한 데서 비롯하여 2년후 홍유후 설총을 종사하였는데 이는 당시 고려의 강한 자주의식의 발로에서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최치원과 설총은 송조 4현에 비하여 시대도 먼저이고 그들의 학문과는 연관이 없음으로 동, 서종향위의 위차를 조정하여 양현을 수위로 하여 동종위는 홍유후 설 선생, 도국공 주염계, 낙국공 정이천, 문성공 회헌 안향, 문정공 환훤당 김굉필, 문정공 정암 조광조, 문순공 퇴계 이황, 문성공 율곡 이이, 문원공 사계 김장생, 문경공 신독재 김집, 문정공 동춘당 송준길 순위로 봉안하고, 서종위는 문창후 고운 최치원, 예국공 정명도, 휘국공 주회암, 문충공 포은 정몽주, 문헌공 일두 정여창, 문원공 회재 이언적, 문정공 하서 김인후, 문간공 우계 성혼, 문열공 중봉 조헌, 문정공 우암 송시열, 문순공 현석 박세채 순위로 봉안하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9. 10철 매안과 위차 조정
상술한 바와 같은 논의는 수년 전부터 제기되었으나 일부 유림들의 완강한 반대로 늘 논의만 계속되는 사이에 유학을 잘 모르고 향교의 봉안 위패를 제대로 모르는 인사에 의하여 향교는 중국 사람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 매도하는 일이 발생되었음은 유림들로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 3대 성인 중 공자는 중국에서 탄생하였고 석가모니는 인도에서 탄생하였고 예수는 이스라엘에서 탄생하였다. 중국인 공자에 의하여 창시된 유교는 중국을 기반으로 하여 발전되었기 때문에 중국인이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유교는 고려 시대에 이미 강한 자주의식을 발휘하여 문묘에 우리나라의 유현을 종사하였고 사대주의가 더욱 심화된 조선시대에도 우리나라 유현을 종사하였으며 광복후 중국인 유현 94인을 매안하고 무에 봉안하고 있던 우리나라 18현을 정전인 대성전에 종사한 것은 유림들의 높은 자주의식에 바탕인 것이다.

불교의 경우 우리나라의 대덕 고승을 법당에 모신 사례가 있는가? 기독교의 경우 우리나라에 포교한 저명한 신부나 목사를 교회 안에 모신 곳이 있는가? 이에 견주어 볼 때 유교는 보다 자주적임에도 중국인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보은 향교 유림들은 지난 7월 21일 유림총회에서 보은향교 대성전에 봉안하고 있는 37위 중 공문 10철을 매안하고 위차를 조정하기로 결의하고 10월 17일 음력 9월 보름날 망참봉심례와 병행하여 10철을 매안하고 위찰흘 조정하였다.

이에 따라 보은향교 문묘는 공자를 정위로 하여 4성을 배향하고 동,서종향위에는 송나라의 4현과 우리나라 18현을 종사하여 모두 27위를 봉안하게 되었다.

매안고 위차 조정 때 고유문은 다음과 같다.

공부자탄강 2556년 을유 9월 경신삭 15일 갑술에 후학 전교 아무개는 감히 고하나이다.

선성이신 대성지성문선왕 엎드려 문인 10철인 비공민손, 훈공염경, 설공염용, 제공재여, 여공단목사, 서공염구, 위공중유, 오공언언, 위공복상, 진공전손사의 위패를 감히 매안하고 겸하게 동서양무를 봉인한 위패의 순서가 예부터 지금까지 송조를 우선하였으나 이번에 연대순위로 조정하기로 유림총회에서 다수결로 결의되어 지금 위패를 매안하고 조정함을 고하나이다.

또한 10철을 매안하고 위령한 고유문은 다음과 같다.

공부자 탄강 2556년 을유 9월 경신삭 15일 갑술에 후학 전교 아무개는 감히 고하나이다.

선사이신 비공민손, 훈공염정, 설공염옹, 제공재여, 여공단목사, 서공염구, 위공중유, 오공언언, 위공복상, 진공전손사 엎드려 시대의 제도와 풍속에 따르고 사세에 따라 길지를 가려 위패를 매안하였으니 엎드려 바라오니 존귀하신 신령이시여 영세토로 편안하소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