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읍 지산1리 (원지산)

희망의 불꽃이 피어나는 마을

2005-11-25     김춘미
만나는 사람마다‘김장했냐’는 말로 서로 인사를 나누며 가을의 끝자락을 보낼 무렵 지산1리를 찾았다.

11월 22일, 마침 농한기를 맞아 마을 회관을 처음 여는 날이라 회관 안에는 동네 주민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한쪽에서는 아주머니들이 겨우내 경로당에서 먹을 김장을 담그느라 분주했다.  이유영 이장(62)을 비롯해 정이 넘치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담소도 즐기며 마을의 이모저모에 관해 얘기를 듣는 시간이 즐거웠다.

지산1리는 27호 85명 가량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고, 남·여 비율이 1:2로 여자가 더 많다. 벼, 고추가 주 재배 작물이며 일부 젖소, 한우, 사슴, 염소 등을 키워 고소득을 내는 농가가 눈에 띄었다. 마을에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48호인 김수온 부조묘와 보은군이 보호수로 지정한 물푸레나무가 있다.

마을 주변이 잘 정돈되고 깨끗하여 오고가는 이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줄 듯 했다.

지산1리는 이유영 이장과 신현호(39) 새마을 지도자, 나기자(50) 부녀회장, 신재준(77) 노인회장이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있다.

#김수온 부조묘
마을에는 조선시대 최고의 문장가인 괴애 김수온 부조묘가 있다. 그는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조의 학자로서 문장가, 정치가로도 명성을 떨친 역사적 인물이다. 1409년 영동군 용산면 상용리 오얏골에서 태어났으며 자(字)는 문량(文良), 호(號)는 괴애(乖崖), 시호(諡號)는 문평(文平), 본관은 영산이다. 1438년(세종 20) 진사시에 합격하고, 1441년(세종 23) 식년문과에 급제 교서관 정자로 있을 때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집현전에서 《치평요람》을 지어 올렸다.

또 45년 승문원 교리로서 《의방유취》편찬에 참여하고, 부사직 때는 《석가보》를 증수하였다. 관직에 있던 40년 간 판서와 대제학, 영중추부사를 거쳐 영산부원군에 올랐으며, 당대 명문장가인 서거정, 강희맹 등에 견줄 정도로 학문과 문장에 뛰어났다.

김수온은 쥐는 잠을 자지 않기에 그보다 빨리 일어날 순 없지만 소보다는 늦게 일어날 수 없어 평생 축시(새벽2∼4시)에 일어났다고 한다. 또한 옛글을 많이 외우기로 괴애 위에 난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기억력이 뛰어났다.

이에 관한 실화가 있다. 신숙주가 국왕이 주신‘고문선’이란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심히 아끼고 소중히 여겨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나 김수온이 간곡히 청함으로 빌려주었는데 한 달이 넘은 후에 책을 찾으러 집에 가보았더니, 한장 한장 뜯어서 벽과 천정에 발라 놓았는데 연기에 끄실려 잘 보이지도 않음을 보고 신숙주가 그 이유를 물으니“내가 누워서 외우느라 그리 하였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당대의 한 지식인으로서 거만한 삶이 아닌 항상 노력하는 진정한 학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그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교육적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 얼마든지 많은데 교육계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 지역만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의 특성을 살려 교육에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

부조묘는 김수온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번역과 간행에 많은 업적을 남긴 그를 위해 성종의 명으로 건립되었다. 원래 보은읍 종곡리에 있던 것을 조선 현종 5년(1664) 우암 송시열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송시열이 명당을 찾아 세운 것이라 하며, 그때 기념으로 심어놓은 물푸레나무가 지금도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다.
주민들의 화합이 잘 되는 걸 보니 명당은 명당인가 보다.

#주민 화합이 가장 큰 자랑
어느 농촌 마을이나 다 있는 마을회관이 '지산1리'에서는 가장 큰 자랑거리다. 이곳은 주민들에게 화합의 결실이요, 마음의 쉼터요, 나눔의 공간으로 인식된다.

98년 대홍수로 보은군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때 지산1리도 마을 뒷산인 건지봉에서 내려온큰물이 마을을 덮쳐 마을 회관은 물론 진입로가 없어지는 등 쑥대밭이 됐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피해 자신의 몸을 대피시켜야 했던 주민들은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혹시 모를 재난에 대비해 주민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을회관을 갖길 희망했다. 주민들이 나서서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내는 돈의 액수가 크고 작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을을 위해 힘을 보탠다는 마음이 더 소중했기에 기부금은 무려 1600만 원에 달했다.

군비보조금과 기부금을 합쳐 드디어 마을회관 준공!
36평 공간은 큰 방 2개와 거실, 주방, 욕실, 화장실 등을 갖춰 주민들은 좀더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 큰 보람은 시골의 주택 구조상 욕실을 따로 설치한 집이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해 부녀회장 나기자씨가 마을회관 욕실에서 노인들에게 목욕 봉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겨울철에는 독거 노인 6명이 이곳에 모여 긴 겨울밤을 함께 보낸다. 한밤중에 행여 무슨 사고라도 날까 염려한 주민들이 내린 결정이다. 이들은 오히려 마을의 의견을 따라준 노인들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해마다 농한기가 돌아오면 마을에서는 노인들의 온천 나들이를 계획한다. 적지 않은 돈이 드는 일이지만 내 부모라 생각하고 기쁘게 동참했는데 금년에는 재정이 어려워 못 갈 것 같다고 한다. 마을 어디선가 선조들이 묻어 둔 보물이 발견되면 좋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마을회관 앞에는 주민들이 한목소리로 자랑하는 드넓은 ‘광장’이 있다. 오랜 숙원이었던 ‘광장사업’ 역시 주민들의 하나된 마음과 이유영 이장의 뚝심 있는 추진력이 낳은 행복한 결과물이다.

굳이 이렇게 넓은 광장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이 이장은 "예전에는 벼를 말리려면 도로까지 나가야 했는데 광장을 만든 후론 콩 타작이며 고추까지 말릴 수 있어 일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며 속 깊은 뜻을 밝혔다. 또한 경운기나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어 마당을 넓게 활용하는 이점이 생겼단다. 내년에는 광장 주위에 나무를 심기로 이미 주민들 간에 합의가 됐다며 이 이장은 뿌듯한 기색을 내비쳤다.

마을탐방 길에 만났던 이장들마다 “우리 마을엔 뭐 자랑할 것도 없는데...”하며 겸손함을 보였다. 지산1리 주민들의 단합된 모습은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진정 값진 ‘자랑거리’이다. 돈이 최고라고 믿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도 못 사는 걸 갖고 있으니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희망이 꽃피는 마을
지산1리 위쪽으로는 청원∼보은∼상주간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8·31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 전까지만 해도 고속도로 건설로 토지매입 문의가 빗발쳤으나 마을 주변의 농경지가 ‘농업진흥지역’으로 많이 지정돼 있어 실질적인 매매는 몇 건밖에 이뤄지지 못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농업진흥지역'으로 묶어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민의 지적이 뒤따랐다.

공사가 시작되고 문제점이 발생했다. 수한면에서 지산천으로 고속도로 구배가 낮아지고, 공사장내 우수를 마을 도랑으로 연결시킴에 따라 토사가 쌓여 도랑을 덮을 정도였다. 결국 이 이장의 노력으로 도로공사는 지산천에 2㎞가량의 배수로를 냈다.

그는 진행중인 공사가 잘 마무리되려면 “주민들과 합의된 사항이 얼마나 잘 이행되는가”가 관건이라며 아무 문제없이 일이 잘 진행되길 바랬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고민과 연구와 해체와 건설을 반복하며 부단히 노력한다. 목적은 좀더 편한 삶을 영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시작한 일이 오히려 불편을 가중하고 손해를 입히는 경우가 그동안 많이 있어 왔다.

지산1리의 미래는 하나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는 후퇴가 아닌 전진으로서의 발전을 가져오길 기대해 본다.

전체 가구수(37호) 중 27호만 주민이 살고 있다는 지산1리에 희망이 꽃피고 있다. 10호에 해당하는 빈집의 경우, 본가는 그대로 둔 채 외지에 나가 있는 자식과 함께 살거나, 주민이 떠나고 그대로 방치한 것이다.

다행히 타지에서 전입한 가정이 2호나 되고, 앞으로 2호가 더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이들의 목적이 전농이 아닌 노후나 요양을 위한 것이라 해도 자꾸 감소하는 농촌인구를 생각해볼 때 득이 되는 현상인 것은 분명하다. 이와 더불어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현재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동료가 돼주고, 아이들에게는 같이 뛰놀 수 있는 친구가 돼줬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이장을 맡고 있는 이유영씨는 84년 청주에서 들어와 축사를 시작했으며, 지금은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지산1리에는 3대가 모여 사는 집이 몇 가구나 있었고, 젊은이와 어린이가 타 마을에 비해 비교적 많은 편이었다. 어린이는 미래의 꿈나무라 했다. 그 꿈나무를 키우기에 농촌은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왜냐면 나무는 뿌리를 내릴 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다. 농촌의 아이들은 복 많은 꿈나무들이다.

잡을 것 하나 없는 희망의 부재 속에 빈손만 휘젓고 있는 농부들의 고단한 삶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녹여주고 있었다.

농부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마을을 유지하며 사는 것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바라보는 사람은 한번 스쳐 가면 그만이지만 그 안에서 뿌리내려 사는 사람들은 가정과 함께 마을도 챙겨야 한다. 마을이 유지돼야 자신의 삶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마을을 형성해 살아가는 농촌의 삶이 호락호락한 힘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지산1리 주민들이 서로 화합하며, 마을을 사랑하는 그 힘이야말로 농촌에 새 불을 지피는 불씨가 돼줄 것이라 여긴다.

<새로쓰는 마을 이야기(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