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교훈
김 홍 영 (마로 갈평, 현대증권 고문)
2000-03-11 보은신문
증권시장은 매매대상을 무엇으로 하는가에 따라 주식시장, 채권시장, 파생금융 상품시장(선물시장, 옵션시장)으로, 대별되며, 또한 매매대상인 주식의 매매장소에 따라 거래소시장과 장외시장(코스닥시장과 이달말 개설예정인 제3시장)으로 나눌수 있다. 최근에는 중소기업, 특히 벤처기업을 집중육성하려는 정부의 시책에 따라 반도체, 인터넷등 첨단기술을 지향하는 많은 중소기업이 코스닥에 등록, 온국민의 관심과 호응속에 주가도 급등하여 과열 투기조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증권거래소시장이 높은 수준의 상장요건인을 충족한 비교적 안정성있는 우량기업인데 비해 코스닥시장은 등록요건이 낮아 위험성도 그 만큼 크다고 볼수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있듯이 주가의 급등뒤에는 급락이 있음을 명심하여야 할것이다. 흔히 투자는 권장하고 투기는 막아야 한다고 하지만 투자와 투기를 구별한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다. 양자의 개념을 구분하는 학설도 구구하여 투자의 목적, 대상, 거래방식, 투자기간의 장·단등에 따라 구분하고 있기는 하나 상대적인 구분일 뿐 절대적으로 구분하기는 불가능하다.
경제여건이나 전망이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고 미국의 다우지수나 나스닥지수의 등락여파가 직접 우리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동조화현상을 감안할때 더욱 그러하다. 인류역사에서 투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증권투기에 관한 영국의 남해주식부터 꼽는것이 정설이다. 1720년초 128파운드에 거래되던 주식이 6월에 1050파운드로 치솟았다가 두달도 못되어 124파운드로 폭락했다는 기록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720년 런던 롬바아드거리는 마차를 타고 구름처럼 모여든 귀족들로 꽉 찼다. 남해주식을 사기 위해서다. 동사는 1711년에 설립된 후 흑인노예공급권을 획득하여 사업전망이 밝았다. 동사는 영국국채를 전부 인수한 다음 인수자금마련을 위해 프리미엄을 붙여 일반에게 주식을 팔았다.
남해주식에 대한 이윤기대가 커지면서 동주식은 날개 돋힌듯이 팔렸으며 이에 착안하여 동사와 유사한 빈껍데기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들 주식도 쉽게 일반에게 매진되고, 남해주식의 인기에 편승하여, 동반폭등 하였다. 투기열풍이 롬바아드가를 휩쓸면서 그 열기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급기야 영국의회는 과잉투기 저지를 위한 거품금지법을 제정 선포하였다. 그 결과 남해주식회사 동인도회사, 영란은행등 몇개의 회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법회사라는 낙인이 찍혀 파산하고 말았다.
뉴욕, 월스트리트에서는 대공황의 신호탄이 올랐던 '29년 10월 28일 이래 '32년 1월 까지 다우지수는 381에서 41로 89%가 하락하였다. 당시의 우량주 RCA는 570달러에서 2.5달러로 뉴욕중앙철도는 256달러에서 8.75달러로 떨어졌다. '30년대초 월스트리트에는 휴지갑으로 폭락한 주권으로 도배를 한 술집과 다방이 많았으며 나중에 주가가 회복되자 다시 뜯어내 팔았다고 한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0년초의 증권파동은 차치하더라도 '78년 건설주 전성기에 주당 3∼4천원하던 주가가 마지막날 1∼2원을 끝으로 상장 폐지된 회사가 10개사가 넘는것을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다.
주가는 항상 오르락 내리락하기 마련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두려움은 탐욕보다 더 강열한 심리적요인이다. 떨어진 다음에 후회하며 법석을 떨기 보다는 지나치게 오르는 것을 미리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함을 투기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또한 증권시장은 부의 분배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거꾸로 부의 편중수단이 될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할것이다. 불확실성이 고조될수록 한탕주의가 아닌 건전한 투자관을 갖고 휩쓸리지 않으며, 적은데 만족하고 분수를 지키는 소박한 투자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