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향기롭게

이하영(시조시인, 외속 장내)

2000-03-04     보은신문
하늘에는 별이 있고 지상에는 꽃이 있고 사람에게는 詩가 있다. 삶을 시처럼 아름답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문이나 예술이 사람의 심성을 바꾸어 놓는데 과연 얼마만큼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선 소월의 시 한편을 읽어보자.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뭅니다.
해가 산마루에 올라와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침이라고 할 것입니다.

수십 권의 책을 읽다가 이 한편의 짧은 시에 매료됨은 무슨 까닭일까? 아마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정서를, 까마득히 잃어버린 기억을 흔들어 놓음이 아닐지….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은 한 송이 꽃을 보는 것보다,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는 것보다, 친구가 냉면 한 그릇을 사 주는 것 보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한다.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며 삶의 윤활유이다.

그러나 시보다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삶 그 자체가 詩인 그런 고운 이웃들이 있다. 내 생활은 검소하게 살면서 이웃의 가난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 남모르게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말없이 사는 사람들, 강물의 오염을 생각하여 세제를 아껴쓰는 주부들, 공기의 오염을 걱정하여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는 분들, 길거리에 함부로 버려진 신문이나 종이, 비닐 봉지 등을 주어서 가까운 쓰레기통에 넣어 주는 분, 승용차를 타고 가며 빈 깡통이나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분들, 질서를 잘 지키고 양보하는 분들, 어린이를 사랑으로 훈도 하고 매를 때리지 않는 분들, 동물을 사랑하며 털옷, 가죽옷을 몸에 걸치지 않는 분들, 육식을 피하고 채식을 하며 몸과 마음의 수양을 닦는 분들…. 나열하면 끝이 없이 많아 우리를 흐뭇하게 한다.

우리가 좋은 일을 하면서 느끼는 자기만족,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을 때 느끼는 충만감은 보약을 먹는 것보다도 우리의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좋지 않은 일들도 많이 있다. 지난 연말에는 송년회다 망년회다 하며 호텔마다 대형 음식점마다 먹고 마시는데 엄청난 돈들을 썼다고 한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단돈 천원이 없어서 점심을 굶는 사람이 있고, 식량도 안되는 농사를 지으며 병이 나도 병원에 갈 돈이 없고 날마다 늘어나는 빚더미에 눌려 고단한 삶으로 허덕이는 가난한 이웃들이 많이 있다. 다행히 나라에서 많은 예산을 세웠다고는 하나 얼마만큼이나 그들의 무거운 삶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 미국 같은 부자 나라도 국가에서 다 해결하지 못하여 많은 민간단체에서 자선사업을 벌이고 있다.

건강한 사람이 병자를 돌보듯 부유한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것은 순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내 부모한테는 용돈 제대로 못 드리면서 교회에 십일조는 꼬박꼬박 바치고 절에 가서 고액권 수표 아낌없이 헌납하시는 분들께 당부하고 싶다. 내 부모에게 십일조 바치고 내 이웃에게 보시하시라고, 그 길이 참으로 천당으로 가는 길이요 극락왕생 하는 길임을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한 젊은이가 부처를 만나러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중년에 이르러 노스님 한 분을 만나 부처가 계신 곳을 물었다. 부처님은 시방 당신 집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시니,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떠나실 거라는 스님의 말에, 그는 곧장 수 십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꼬부랑 할머니가 된 노모가 맨발로 달려나와 그를 맞아 안았다. 어머니 품안에 얼굴을 묻은 그는 그토록 찾던 부처가 바로 자신의 노모임을 깨달았다.

미국의 최고 갑부 록펠러는 노년에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을 하였는데 의사로부터 1년 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록펠러는 왜 자신이 병들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베풀기로 작정하고 계속해서 좋은 일을 하고 다녔다. 1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그는 죽지 않았다. 봉사하는 마음이 그를 98세까지 살게 해 주었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