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8일 어버이날에 만난 사람 … 탄부 장암 김상국씨 못다한 효 이야기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2005-05-06     송진선
자식이 효도를 하려고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동안은 부모에게 돈을 쓸 여유가 없었고 이제 돈 좀 벌어서 여유가 생겨 소고기며, 닭고기며 부모에게 몸에 좋고 맛있는 것들은 한 상 푸짐하게 차려놓으나 이미 부모는 늙고 병들어 소고기를 씹을 치아도 없고 또 푸성귀만 먹었던 버릇 때문에 비린내나는 것을 거부한다는 말도 있다.

눈물나게 만드는 우리들의 부모의 모습이다.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불효의 심정이 더욱 절절해지는 5월.

탄부면 장암리 김상국(김상연)씨는 특히 5월8일 어버이날 왁자지껄하게 부모에게 관심을 갖는 것을 보면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자신은 그럴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부모에게 잘해야 한다는 말만 되뇌인다.

그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어머니 모습은 항상 고생만 하고 맘 편히 지내지 못하고 눈을 감으신 모습이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경제.

혈압으로 쓰러져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지내는 아버지를 그의 어머니는 수년간 대소변을 받아내며 남편에 대한 사랑을 다했다.

들에 나가 일을 하다가도 들어와서 밥을 챙겨주던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를 받았던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20여년 전의 일이다.

3남2녀의 자녀를 둔 어머니는 4-H회장까지 지내고 예의가 바르고 농사도 열심히 지어 통일벼 생산왕도 했던 작은 형을 24살때 사고로 잃고, 감기가 폐렴으로 발전돼 눈을 감은 누나를 가슴에 묻었다.

어머니가 40살때 태어난 늦둥이 김씨에게 남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남편 봉양하느라 고생하고 장성한 자식 둘을 가슴에 묻은 정말 가여운 모습 그대로다.

일만 하다가

땅 1000평 정도 되는 것 일궈 가정을 꾸려가던 어머니는 하루도 쉬지 않고 들 일을 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웃음이 살아있는 그런 가정이었다.
큰형과 누나가 결혼하고 김상국씨는 장암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자식 둘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는 잊는다고 잊혀지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생각을 떨치기 위해 일에 매달렸다.

그러다 어머니 역시 혈압으로 쓰러져 버렸다. 2000년 10월이다.  직장을 다녀야 했고 혼자 몸이었기 때문에 돌볼 사람도 없어서 노인 요양시설인 인우원에도 입소한 적 있다.
그러다 돌아가실 때까지 병원에 입원에 계셨다. 맛있는 것 한 번 못먹고 맛없는(?) 병원 밥만 먹으며, 어디 관광도 한 번 다녀오지 못하고 자식들의 극진한 보살핌도 받지 못했다.

집으로 모시고 와도 보살필 사람이 없어 병원에서 자신이 출근하면 자원봉사자의 힘을 빌었고 퇴근해서는 자신이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을 3년이상 계속했다.

부모의 오랜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지만 김상국씨는 병원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극진히 보살폈다.

아버지 병간호하느라 고생만 하고 자식 둘을 가슴에 묻은 불쌍한 어머니는 김상국씨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돌아가시기 전 낡은 집이지만 어머니의 채취와 손길이 남아있는 집에 한 번 모시지 못하고 병원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우리도 늙는다
2003년 6월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2년이 다돼 간다.
김상국씨는 어머니가 쓰던 그릇 등 어머니의 채취가 묻어있는 것을 고스란히 남겨 두었다.

그리고 3일 탈상을 했지만 장암리 집에서는 아직 상국씨가 영정 사진을 모셔놓고 물 한 그릇 떠놓고 향을 피운다.

출근할 때는 다녀오겠습니다, 퇴근해서는 다녀왔다고 고하고 있다. 어머니와 아직도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상국씨는 어머니 기일에 그동안 해왔던 향 피우는 일을 그만두려고 한다. 진짜 탈상을 하려고 한다.

상국씨는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고 또 모시기를 꺼리지만 바로 자신들도 얼마안가 그렇게 힘없는 모습으로 늙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부모를 대하는 모습을 바로 자식들이 모두 대물림하기 때문에 부모에게 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모에게 잘해야 자식들이 보고 따라 배워 자신도 효도를 받지만 부모를 학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신도 끝내는 자기 자식에게 그런 학대를 받을 수 있다며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항상 젊을 줄 알지만 우리도 나중에는 늙고 병들어 힘없는 노인이 된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노인들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한다.

인우원, 효도원에도 다니고, 성암안식원에도 다니며 노인들과 이런 저런 얘기도 하다 집으로 온다는 상국씨는 입소한 노인들을 통해 어머니를 본다고 한다.

노인들을 보고 오면 며칠은 마음이 흐뭇한데 요즘은 바빠서 노인들을 보지 못해 마음 한켠이 무겁다.

조만간 시간을 내서 그곳의 노인들을 보러갈 작정이다. 아니 그의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러갈 계획이다.

탄부초등학교 보덕중학교 보은농고를 졸업하고 여러 직장을 다니다 지난해부터 수정초등학교 통학차량을 운전하는 상국씨는 아직 미혼이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미혼인 늦둥이 막내아들 걱정에 눈도 못감아 걱정 말라며 착한 아내 얻겠다고 약속하고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어머니와의 약속이긴 하지만 이제는 마음씨 착한 아내 얻어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