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 근현대사 110년 백년대계 발전의 지표로

2005-04-08     송진선
1895년 고종 32년 현(縣)에서 군(郡)으로 승격된 보은군은 올해가 정군(定郡) 110주년이다.

우리 보은의 역사가 110년이겠는가 마는 보은군이란 명칭을 갖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110년을 이어온 역사적 사실에 근간을 두어 지난 근세사에 있어 묻혀져 발현되지 못했던 위대한 보은의 얼들을 일으켜 이 땅에 사는 것에 대한 자긍심과 저력을 결집해 미래를 향한 새로운 지표를 세우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보은군 통계연보를 기준으로 보은군 행정기구의 변천사, 인구변화, 기상, 생활, 재정, 농림수산업의 변천을 알아본다.

보은은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왕위에 오른 태종이나 조카인 단종을 유배시키고 왕위에 오른 세조 등 그들의 업적이야 어떻든 목적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이조시대 왕과 특이하게 인연이 많다.

갚을 보(報), 은혜 은(恩)을 쓰는 보은군의 지명 유래는 조선 태종 때 붙여졌는데 그동안 악몽에서 시달리다가 속세를 떠나있는 산 속리산에서 왕자의 난을 일으켰던 마음의 평정을 찾았고 그 고마움에 은혜를 갚는다는 보은(報恩)지명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은혜를 갚은 고장이 아니라 태종이 우리 지역에서 은혜를 입은 것이다.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보은에서는 마음의 평정을 찾고 순수한 마음, 인간 본연의 선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보은군이 국민들에게 평상심을 되찾게 해주느라 기를 모두 빼앗겼기 때문에 이제는 국민들이 보은군에 쇠진한 기를 보강해주는 은혜를 갚을 차례가 됐다.

지금 인구 3만8000여명. 군으로서의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보은이 이제는 기지개를 켤 차례다.

청원∼보은∼상주간 고속도로 건설, 청주∼보은간 4차선 도로 개설, 살아있는 환경, 후한 인심 등 보은군은 제2의 힘찬 도약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보은군 이름을 얻기까지

잘 알다시피 보은군은 역사적으로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던 지역으로 삼국 초기에 신라가 차지하고 자비왕 13년인 470년 국내 최고성(最古城)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0순위에 오른 삼년산성을 축조하고 북방진출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그러다 지중왕 3년인 502년에 주군제(州郡制)를 시행할 때 비로소 삼년산군이라 했다가 경덕왕 16년인 757년에 삼년군이라 고치고 청천현과 기산현을 영현(領縣)으로 거느렸다.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에 보령(保齡)으로 고쳤고 뒤에 보령(保令)으로 바꿔불렀고 현종 9년 1018년에는 상주목에 속했다가 명종 2년 1172년에 감무(監務)를 두게 되었다.

그러다 조선 태종 6년인 1406년에 현(縣)으로 승격되었으며, 태종 13년인 1413년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편입됐고 태종 16년에 지금의 이름인 보은(報恩)이 됐다.

1806년 순조 6년 왕의 태실이 속리산에 있으므로 현감(縣監)을 군수(群守)로 승격시켰고 고종 32년인 1895년에 지방제도의 개편에 따라 보은군(報恩郡)으로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 회인현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회인군의 읍내, 서면, 동면, 남면, 강외 5개면과 옥천군의 안남, 안내면 일부와 충청남도 회덕군 주안면의 일부를 병합해 읍내, 산외, 속리, 삼승, 탄부 마로, 수한, 회북, 회남의 10개면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1947년 2월 속리면이 내속리, 외속리로 분면됐고 1973년 보은면은 보은읍으로 승격돼 지금의 1읍 10면이 됐다.

보은군청 소재지는 보은읍 삼산리 130번지 현재의 보은읍사무소 자리에서 1982년 2월 군 조례 제 700호로 보은읍 이평리 45번지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은군 면적

보은군 통계연보를 근거로 보은군의 면적을 살펴본다.
행정구역 보은군의 면적은 1962년 통계연보에 따르면 599.14㎢였다. 그러나 1970년에는 596.72㎢로 축소됐고 1977년에는 다시 596.63㎢로 줄었다.
1978년 598.8㎢, 1981년 598.49㎢, 1983년 598.41㎢로 감소했고 1985년에는 599.67㎢로 소폭 늘었다.

1990년에는 583.48㎢로 줄고 1991년 583.66㎢로 다소 늘었고 1994년 584.72㎢로 늘었고 1998년 584.53㎢, 2000년 584.45㎢로 줄었고 2002년 584.48㎢로 조정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행정기구 변천사

1895년 고종 32년 칙령 제 98호에 의해 8도가 23부로 변경됐고 관찰사 휘하의 부윤, 목사, 부사, 군수, 서윤, 판관, 현감, 현령은 모두 군수 직으로 전환됐다.

보은과 회인은 공주부에 소속되었다.  갑오개혁이 실패하자 칙령 제 35호(1896년)로 23부제는 1년만에 폐지하고 13도제를 실시했으며 군을 4등급으로 나눠 군에 군수를 두어 보은은 4등, 회인은 5등 군으로 충북도에 속했다.

일본이 물러가고 미군이 진주해 미군정이 들어서기까지 기존 틀이 유지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11월18일자 대통령 제 32호 지방행정기관직제에 의해 도에는 국(局)이, 군에는 과(課)를 두게 됐다.

1961년 5·16 혁명으로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군 자치제가 실시됨에 따라 군수 아래 내무과, 재무과, 산업과, 건설과, 교육과를 두고 1975년 보은군 부군수제와 새마을 담당이 신설됐다.

1981년 11월 부군수제가 폐지됐다가 1985년 3월 부활됐다.

1991년 기초의회가 구성되면서 의회를 보조할 의회사무기구가 신설 간사, 전문위원, 의사계가 설치됐다.

1998년 작은 정부를 구현, 군 행정기구 및 공무원이 크게 감축됐으며 공무원 정원이 동결되다 여유 기구제 등이 도입됐다.

또한 재난에 대한 체계적이고 신속한 대응 및 복구를 위해 올해 재난안전관리과가 신설되고 주민자치과가 폐지됐으며 특정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관광사업시설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보은군 행정 기구는 군수, 부군수, 기획감사실, 종합민원실, 행정과, 재무과, 사회경제과, 환경위생과, 농축산과, 문화산림과, 건설과, 관광사업 시설단, 보건소, 농업기술센터, 상하수도사업소, 의회사무과가 편성, 15개 실과소 사업단이 운영되고 있다.
군 산하기관까지 총 65계 담당 부서로 조직돼 있다.

현 박종기 군수까지 39대 군수 재임

1948년 정부수립이후 역대 보은군수는 48년 9월1일부터 49년 7월4일까지 재임한 초대 안광국 군수를 비롯해 2002년 7월1일 취임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 박종기 군수까지 39대 군수가 재임했다.

2대는 한정구, 3대 이수원, 4대 이송무, 5대 김문배, 6대 송경섭, 8대 정만근, 9대 유신목, 10대 이종곤, 11대 김문배, 12대 유종덕, 13대 김석구, 14대 임혁재, 15대 정대용, 16대 채동환, 17대 이중천, 18대 정화국, 19대 김동응, 20대 신홍균, 21대 신준식, 22대 김종응, 23대 이승우, 24대, 조남성, 25대 유명종, 26대 권기상, 27대 경의현, 28대 최만식, 29대 이석의, 30대 김중구, 31대 유의재. 32대 석상태, 33대 김동기, 34대 이재충, 35대 곽동국, 36대 안창국, 37대 김종철, 38대 김종철, 39대 박종기 군수이다.

이중 재임기간이 짧은 군수는 20대 신홍균 군수로 73년 8월13일부터 10월15일까지 겨우 2개월 재임하고 8대 정만근(55년 6월4일∼9월11일)군수와 민선 단체장 선출 전인 36대 안창국 군수가 95년 3월27일부터 6월30일까지 3개월 재임했다.

또 임기가 보장되는 민선 이전 관선시대 재임기간이 가장 긴 군수는 16대 채동환 군수로 1964년 11월1일부터 1967년 10월24일까지 2년 11개월을 근무했다.
그다음은 17대 이중천 군수로 2년 9개월 근무했다.

<다음호에는 인구추이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