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부면 대양리

단일 마을로선 인재배출 많은 곳으로 손꼽혀

2005-03-25     임향묵
대양리는 면소재지로부터 1.5㎞ 지점인 면의 남쪽에 위치하며, 동과 남은 마로면, 서는 성지리, 북은 덕동, 벽지, 하장, 구암리와 접하고 있다.
본래 마로면의 지역이었으나 지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탄부면에 편입되었다.
운무산 아래 위치해 숲으로 둘려 쌓여있던 마을 특성상 ‘수피’라고 불려졌었다.
대양리라는 지명은 나무로 뒤덮혀 햇볕이 잘 들지 않았던 곳으로 햇볕이 가득 들기를 기원하는 바램으로 인해 생기게 된 것이다.

배산임수의 마을
이정표를 따라 들어간 마을은 산을 등지고 앞쪽에는 보청천을 끼고 전형적인 배산임수를 보이고 있는 대양리는 한 부락을 형성하는 시골 마을치고는 상당히 큰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이곳은 산아래 교회를 비롯한 집들이 넓게 퍼져 시원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특이한 점은 보통 시골 마을들이 북서쪽으로 산을 등지고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반해 대양리는 남쪽으로 산을 등지고 있어 대부분의 집들이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 중심에는 200년 가까이 된 느티나무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옆으로 마을주민들의 공동생활터인 회관이 위치하고 있다.
대양리는 몇해 전 경로당을 새로 증축하여 회관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주로 회관에는 젊은 중·장년층과 부녀회에서 사용하고 경로당은 말 그대로 노인층에서 사용하고 있다.
수원 백씨의 집성촌이었던 대양리는 현재 100여 가구수 중에 20여 가구만이 수원 백씨일 만큼 다양한 성씨로 구성되어 있다.
농촌마을의 이농현상과 고령화현상은 대양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70­80년대 160여가구가 생활했었다는 대양리는 계속되는 인구감소로 현재는 100여 가구만이 생활하고 있다.
더욱이 3대가 함께 생활하는 집은 드물고 홀로 사시는 노인분들이 20%가량을 차지하며 마을의 젊은 중심측은 40­50대가 주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홀로 사시는 노인분들이 많기 때문에 경로당과 마을 회관은 늘 북쩍거린다.
농사철이 아닌 시기에는 항상 회관에서 식사를 하는 등 다같이 모여 하루를 보내는 공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 최고령 노인분은 백병기(96)씨로 몸이 불편한 부인 서순영(93)씨, 둘째 아들 부현(64)씨와 함께 생활하는데 할아버지 본인은 아직까지 불편함 없이 정정하시다고 한다.
한편 과거 밭농사가 주를 이루었다는 대양리는 현재는 밭을 개간해 논으로 바꿔 벼농사를 주로 하고 있다.
물이 부족하여 식수난을 겪었던 이곳은 지하수도 부족해 6번의 지하 암반관정을 굴착한 끝에 겨우 식수난 해결을 하였고 또한 물을 대어 논농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규문(53)씨를 제외한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벼농사를 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개방되기 시작한 수입쌀과 계속해서 줄어드는 쌀소비로 인해 주민들은 다른 농작물로의 변경을 고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교회가 있는 마을
대양리하면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대양교회(대한예수교 장로교회)일 것이다.
대양리를 찾아가면 입구에 대양교회의 이정표가 설치돼 있으며, 마을로 들어서면 산 위에 제법 큰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일제시대 때 들어섰다는 교회는 지역 내 다른 어떤 마을보다 먼저 교회의 선교활동이 있었던 마을로 그만큼 빠른 발달을 가져왔다.
교회는 당시 교육이 미흡했던 시골마을 주민들에게 발달된 선진문물을 전해주게 되었다.
물론 100% 교회의 힘으로 마을을 발전시킨 것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빨리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고 교육에 남다른 정성을 들여 다른 지역보다 많은 인재를 배출해낸 것에 교회의 영향이 있다는 것은 마을 주민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또한 이곳 출신의 목사와 장로 등 교회와 밀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여럿 있다.
한때 200여명의 주일학교를 운영했던 교회이지만 어린아이들이 없는 현재는 40여명의 어른들만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

많은 인재 배출은 마을의 큰 자산
대양리 주민들이 가장 자랑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읍이나 면소재지도 아닌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해 냈다는 것이다.
전 내무부장관 출신의 백광현(74)씨를 비롯해 조달청 서기관 백순현(56), 한국전력공사 수원관리처장 백승도(56), 국정원 충남지부장 황인학(50), 경찰청 총경 이상원(48)씨가 모두 이 지역 출신의 인사이다.
이밖에도 전국적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해 낸 마을로 유명하다.
간혹 한두명의 유명한 인재를 배출해내는 경우도 드문 상황에서 한 마을 내에서 이렇듯 많은 인재를 배출해 낸 것은 대양리만의 자랑인 것이다.
지난 90년대 초 마을 입구에 준공된 다리는 공사가 시작돼 준공되기까지 출향인들의 도움이 컸다는게 주민들의 이야기이다.
과거 나무다리를 만들어 생활하다 주민들이 정성껏 모은 돈으로 조그만한 다리를 설치했으나 보청천의 물이 조금만 불어나도 다리가 잠겨 마을 주민들의 불편이 많았던게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수해로 인해 새로운 다리가 준공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출향인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대양리 마을의 이장인 김문식(56)씨는 “앞으로는 많은 출향인들과의 관계에 있어 서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좀 더 마을 발전을 위해 힘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농어촌 도로 개설 시급
어느 마을이던지 해마다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하나 둘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양리 마을 주민들의 가장 큰 해결과제는 끊어져 있는 도로의 연결이 가장 큰 숙원인 셈이다.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대양리와 기대리, 성지리를 연결하는 두 개의 도로를 개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말한다.
과거 소도로가 있었던 그 곳은 큰 도로의 확장 등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소도로가 사라진 후 임도가 생겼지만 제대로 포장이 되지 않아 주민들이 활용하지 못해 현재는 도로가 끊겨 있는 상황이다.
그곳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농경지로의 길이기 때문에 농번기를 맞아 주민들의 불편이 큰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현재 대양리에서는 대양리와 기대리, 성지리의 인도를 농어촌도로로 신청을 해서 건교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끊겨진 도로만 이어진다면 마을과 마을을 이동할때도 많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으며 농경지로의 이동도 훨씬 편리해지기 때문에 주민들은 빠른 시일 내 건교부의 승인이 나서 해결이 나길 바라고 있다.
이와 함께 농경지의 포장도 주민들이 바라는 숙원 사업 중 하나이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벼농사를 짓고 있는 상황에서 농경지의 포장은 좀 더 편안하고 신속한 농경생활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동안 구암리쪽에만 제방이 설치되고 반대편 대양리쪽에는 제방이 없어 홍수시 1만5000여평의 농경지 침수가 잦았으나 올해 도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나머지 한쪽의 제방 설치 작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한시름 놓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