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일제지명 바로잡자

천황봉(天皇峰)→천왕봉(天王峰), 구암리(九岩里)→구암리(龜岩里), 구티리(九峙里)→구티리(龜峙里)

2005-03-04     송진선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지 60주년인 올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일제가 멋대로 왜곡한 지명(創地改名) 속에서 우리 지역의 지명도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자치단체의 보다 적극적인 개명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녹색연합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백두대간이 지나는 전국 32개 시·군의 자연 지명과 행정지명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가장 많은 왜곡 유형은 큰산이나 봉우리 이름에 들어가는 왕(王)자를 황(皇)이나 왕(旺)으로 바꾼 경우로 녹색연합에 따르면 황(皇)은 일본 천황을 의미하고 왕(旺)은 日+王으로 일본의 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

속리산의 주봉인 천왕봉도 천황봉으로 왜곡됐다는 것이다.

신라때 천왕봉 산제사를 지내던 사당을 ‘대좌제 천왕사’로 표기했고 조선 선조때 백호 임제 선생의 시문에도 천왕으로 표기됐을 뿐만 아니라 구한말 호산 박문호 선생이 지은 시문에도 천왕봉으로 명기하고 있어 속리산 천왕봉임을 알 수 있다.

또 고지도인 팔도군현지도와 일본 육군이 한국 침략에 이용할 목적으로 1911년에 발행한 ‘한국 지형도’에는 천왕봉으로 명기되었다.

그러다 1918년 일본 총독부 육지 측량부가 만든 지도부터는 천황봉으로 표기, 창지개명된 땅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또한 마을 이름은 마을에서 유래하는 전설이나 특이한 지형지물을 따서 지었으나 행정편의를 위해 쉬운 한자로 고쳐 원형이 크게 왜곡된 채 사용되고 있다.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있어 마을이름에 거북이 구(龜)자가 들어간 지명은 상당부분 구(九)자로 왜곡됐는데 이 또한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나타났다.

탄부면 구암리도 왜곡 사례 중의 하나다.
현재 구암리(九岩里)로 쓰고 있는 구암리(龜庵里)는 거북이 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거북바위, 구바우 또는 구암(龜岩)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암리(九岩里)라 한 것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아직도 6, 70세 노인들은 현재의 바위 아홉개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풀이된 구암(九岩)이 아닌 귀바위나 구바우(龜岩)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지명이 왜곡됐음을 알 수 있다.

산외면 구티리(龜峙里)도 왜곡되기는 마찬가지다.
구티리는 원래 마을 입구에 있는 산이 거북이와 같고 거북티 고개 밑이 되므로 거북티 또는 구티(龜峙)라 했는데 1914년 일제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티리(九峙里)로 바뀌었다.

이외에도 바위가 많아 바위 골 또는 암동(岩洞)이라 불리던 산외면 신정리를 비롯해 산외면대원리·이식리·탁주리, 삼승면 달산리·서원리, 수한면 소계리, 외속리면 오창리, 보은읍 이평리·봉평리·대야리 등은 한일 합방 후인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 통폐합을 실시하면서 마을 이름을 표기한 것이 원래 마을 이름이 아닌 한자로 표기됐다.

자칫 옛날 조상들이 부르던 마을이름의 어원이 없어질 상황이다.  더욱이 마을의 옛 이름을 잘 알고 있는 어른들이 점차 사망해 없을 경우 자라나는 세대들은 마을의 어원조차 모른 채 일제 때 표기한 한자가 어원인 것으로 잘못 인식할 소지도 높다.

따라서 일제에 의해 왜곡된 땅이름의 원형을 복구하는 지명개정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