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저 江을 건너갑니다

김 기 준(보은누청, 대전 중구청)

2001-10-13     보은신문
옷깃에 찬바람이 묻어나 먼산을 바라보니 어느새 가을이 산허리까지 내려와있습니다. 저녁무렵이면 스스로 쓸쓸해지고 마는 가을 江을 바라보며 혼자서는 건널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아마 저는 은행잎이 노랗게 신열을 앓으며 떨어질 때 쯤이면 또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사람들은 누구나 저 江을 건너갑니다. 어떤 사람은 편하게 江을 건너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나래소리 한숨소리에 잠 못들며 노를 저어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건너가는 저 江의 끝자락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젯밤 저는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이상한 꿈을 꾸다 잠에서 깨어났는데 웬일인지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새벽녘에 창문을 열어보니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출근을 한 뒤에야 그 가을비가 슬픈 사연을 알리는 눈물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밤새 또 한 분이 가을 비 속으로 돌아오지 않을 江을 건너 갔습니다. 그 분은 제가 어릴적부터 존경해 오던 누청리 신원사의 주지승인 법성(法性)스님입니다. 몇해 전부터 노환으로 앓고 계셨는데 저는 이 핑계 저 핑계로 그 분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스님을 찾아 뵙기로 했었지만 또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 분은 결국 고단한 삶의 끈을 놓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쓸쓸히 혼자 가셨다고 합니다. 비행기만 빠끔하게 날아가는 시골에서 자란 저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동네 근처 암자에서 생활하시는 그 스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20여년 전에는 몇 달 동안 스님과 함께 생활을 했고, 스님은 저를 위해 조석으로 불공도 드리고 공양을 해주셨지요. 그러나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저는 감히 그 큰스님의 은혜를 잠시 잊어 버리고 살았습니다. 저는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세가지 이상의 반찬을 차리는 것을 보지 못했고, 아픈 몸이었지만 불공 거르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분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스님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스님은 제게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큰스님의 뜻을 저버리고 게을리 살아온 때문일까요? 가을 바람 한 점에 살 당기고, 심장이 떨리는 것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스님은 지난 10일 다비를 하셨습니다. 이제, 스님이 계시던 그 자리에 그 분은 계시지 않고, 그 분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스님의 흔적을 가슴에 담아 두어야 하겠습니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