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세상이 들어 있다 -독서의 달을 맞아

2004-09-18     보은신문
내가 어렸을 때는 읽을 것이 부족했다. 2남 2녀인 우리 형제 중 막내 동생과 나는 모든 것을 읽어치웠다.

나이에 맞게 읽을거리를 찾는다는 것은 사치였고 남의 집 마냥 전집으로 책을 들여 놓는다든지 책을 사게 돈을 달라고 한다든지 그런 것은 생각도 못했던 그 때, 유일하게 돈을 내고 책을 빌려본 것이 만화였다.

방학이면 만화방 문 열기 전부터 가서 기다렸다가 연탄 냄새나는 난로 옆에서 최대한 버틸 만큼 공짜로 보다가는, 글씨 많고 두꺼운 것 만 골라 품안에 안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정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초등학교 시절의 ‘선데이 서울’을 뭔지도 모르고 글자라서 그냥 읽었다. 범죄자들의 눈을 검은 선으로 가려놓은 것이 참 많았던 읽을 것에 목말라 했던 그 시대의 추억이다.

읽을 것이 차고 넘치는 요즘 아이들은 ‘읽을거리 홍수’로 나름의 피곤함이 있지 않을까?
이런 차고 넘치는 시대에 갈급함을 모르는데 어찌 스스로 구하려 하겠는가?

이 세상에 공부 잘하게 만들어 주는 책은 없지만 공부를 잘 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된다는 정답이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으로 나타나는 공부의 비중은 점점 더 해가고 공부를 잘 하기 위해 투자하는 비용과 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그러나 단순한 암기력과 계산능력으로 우등생이 될 수 있는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뿐, 독서능력이 없고 자기 주도적인 학습태도를 기르지 못한 아이들은 갈수록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기 쉽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학력을 평가했을 때 공통적인 문제점이 어휘력 부족이라고 한다.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많기 때문에 이해가 잘 되지 않고 또 건성으로 빨리 읽어치우는 아이들이나, 인터넷 서핑과 만화책을 즐기는 아이들은 수준 높은 어휘를 익힐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 어휘력이 풍부하면 국어나 영어 공부에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학이나 과학을 공부할 때도 어휘력은 중요하다.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려면 수리 과학적인 어휘가 필요한데 이는 독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물론 무조건 책만 많이 읽는다고 능사는 아니다. 같은 책도 여러 번 꼼꼼하게 읽어서 완전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 권을 읽더라도 책 속에 담긴 지식뿐만 아니라 그 의미와 감동까지 챙길 수 있는 독서방법이 필요하며, 제대로 된 독서습관을 기르는 데는 부모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독서를 즐기는 자세를 기르게 하려면 첫째, 5분 이상 책을 못 읽는 아이들에게는 길이가 짧고 쉬운 단어로 이루어진 줄거리가 강한 책이 좋다. 일단 한 권을 흥미 있게 끝까지 읽고 나면 다음 책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다.

둘째, 만화책만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삽화가 많은 책을 골라 준다. 그림 위주로 독서하는 고학년 아이들에게는 줄거리가 감동적이고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되어 있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필요하다.

셋째, 일단 책이라면 도망부터 가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는 엄마와 함께 독서를 시작해 보는 것이 좋다. 재미있는 의성어가 나오는 부분, 급박한 상황인 부분만 읽어서 흥미를 끄는 방법도 있다.

넷째, 아이가 책에 편안하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온 가족이 모여서 책을 늘어놓고 함께 읽는 것도 좋은 방법으로 부담 없이 책의 내용에 빠져들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 어른들은 독서의 필요성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나 이런 기회에 내 아이의 독서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무엇을 얼마나 노력하는지 점검해 보자. 혹시 방관은 하고 있지 않는지.....
책은 세상이 들어있다. 아이만 그 세상에 들여보내려고 하지말고 나 자신도 채근해서 함
께 가 보자. 어쩜 잊었던 감동과 만날 수도 있다.
/정 해 자(보은 삼산)
·글쓰기 독서지도사
·보은 도서관 '책 읽어주는 선생님'
·보은 도서관 '어린이 독서교실'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