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인풍림정사 은행나무 고사 위기
은행도 덜 달리고 나무 정상부 은행 잎도 없어
2004-07-31 송진선
현재 은행나무 정상 부근과 가지 끝은 은행 잎이 없고 은행도 거의 달리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풍림정사 은행나무는 수령 200년이상된 노거수이지만 기둥이 어른이 두 팔로 안아도 못안을 정도로 굵고 매년 은행 수확량도 많았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은행이 많이 달리고 은행 잎도 무성했는데 올해는 원인 모르게 생육이 부진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문화재인 풍림정사 앞에 있는 은행나무가 이같이 생육이 부진하자 마을 주민들은 고사될까봐 노심초사하며 치료를 희망하고 있다.
풍림정사는 호산 박문호(1846∼1918)선생이 학문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강당이다.
고종 9년인 1872년에 처음 지은 풍림정사는 정면 6칸 반,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중앙의 2칸은 강당 구조를 하고 있다.
뒤에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후성영당(後聖影堂)이 있는데 주자, 송시열, 박문호, 이이, 한원진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영해 박씨인 박문호는 조선 말기의 성리학자로 한말 개화기의 수난 속에서 과거를 단념하고 초야에 묻혀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하고 후학을 양성하는데 전념했다.
‘호산집’이 있으며 특히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교본인 ‘여소학’이 있다. 림정사는 1979∼1980년에 도비로 보수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