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한면 소계리 출신 선진(주) 박성수 회장
4만평 규모 첨단 복합단지 조성 5년내 현대중공업 규모 회사경영 꿈
2004-05-22 송진선
그런 박성수 회장이 또 하나 큰 일을 저질렀는데 바로 충남 천안시 성남면 신사리 4만평의 부지에 270여억원을 투입, 1년6개월만에 선진 첨단 복합단지를 완공, 21일 준공식을 개최했다.
박성수 회장은 4만평에 270여억원이란 자기 자본을 투입해서 대단위 복합 단지를 조성하고도 아직 이게 꿈의 완성은 아니라고 한다.
10년전 전경련 주최로 현대중공업을 방문한 자리에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57세때 지금의 현대중공업을 창업했다는 말을 듣고 반드시 현대중공업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는 꿈을 가졌다. 5년안에 현대중공업 규모의 회사를 만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게 그가 꾸고 있는 꿈의 완성이다.
그리고 현재 완제품을 대우와 현대의 OEM방식으로 판매되는 것을 선진 브랜드로 판매하는 꿈도 곧 실현할 계획이다.
첨단 복합단지가 들어선 천안시 목천은 충청권의 중심으로서 수도권 및 사통팔달의 지역간 교통연계망을 확보하고 있으며 청주국제공항, 고속전철 천안아산역 등과 인접한 것은 물론 주변에 대학과 연구단지 등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돼 있어 국제 교류도 우수한 지역이라는 것을 꽤뚫고 향후를 내다보며 부지를 점찍었다.
첨단 복합단지는 선진정공(주)와 선진특장자동차(주)의 생산 공장으로 사용되며, 올해 중에 연구소와 연수원이 추가로 건립되고 국제 규격의 운동장도 갖추고 있어 연구와 제조, 연수를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명실공히 복합단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선진정공(주)는 굴삭기의 핵심 부품인 감속기 제조부문을 천안으로 옮김으로써 자체설비 증가율을 63% 증가시킨 결과 전년대비 매출을 120% 신장시켰으며, 또한 연간 3만대의 감속기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게 됐다.
선진특장자동차(주) 자동차 검사장, 세차장 시설, 도장부스 등 생산시설 인프라를 확충하고 냉동탑차, 윙바디, 트레일러 믹서 및 특수차량에 지속적인 R&D 투자를 통해 꾸준한 성장이 기대된다.
이번 복합단지 준공으로 정밀기어(감속기) 및 특장자동차의 윙바디, 냉동탑차, 트레일러믹서, 콘크리트 펌프카를 완벽하게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게 됐으며, 연간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울러 충청권의 산학연 공동기술개발 활성화 등을 통한 충청지역 정밀기계와 특장자동차의 경쟁력 강화 및 고부가가치화를 도모함으로써 이와 연계된 파생제품의 개발 및 사업영역의 확장을 통해 천안지역의 고용창출은 물론 수익을 지역에 환원함으로써 지역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4만평의 대지 위에 첨단복합단지를 준공한 선진(주)의 박성수 회장은 1년6개월 내내 현장에서 생활하며 공사를 직접 지휘했고 제아무리 전날 술에 떡이 돼도 새벽 5시면 일어나고 6시면 나가 회사에서 제일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다.
성공신화 뒤에 있는 배고픈 과거가 그를 이렇게 강하게 만들었다. 1956년 수한면 소계리에서 6남매중 셋째로 태어났다. 끼니를 걱정해야할 정도로 가난했다. 그런 가정환경에 배움은 무슨. 허기를 면하기 위해 16살 무렵 2500원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연탄배달, 중국집 배달원, 오토바이 수리공 등 소위 밑바닥(?) 생활을 훑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오로지 돈버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박성수 회장에게 지금의 위치로 설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다. 트럭 조수에서 출발해 운전사가 되었고 30세때인 1985년 자동차로 물건을 운송하는 희망운수를 차렸고 1988년 지금 선진(주)의 모기업이 된 선진통운을 설립, 전국 화물 운송업체로 성장한 것이다.
이것이 기반이 됐다. 신뢰를 바탕으로 초지일관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해 납품하면 대기업이라도 꿀릴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했다. 91년 냉동탑차, 윙바디, 트레일러 믹서 등 특수차량을 제조하는 선진특장자동차를 설립했으며, 국내 모든 자동차업계와 OEM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특장업체의 정상에 올랐다.
그후 정밀기어 및 굴삭기 부품제작 등을 생산하는 선진정공을 창업했고 식품제조, 유통업체인 명식품을 설립하는 등 사업다각화로 명실공히 제조업체로서의 위용을 갖추게 됐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2002년 중국 땅 50만평을 확보해 선진정공연대유한공사를 설립하고 선진 G&C 설립을 통해 중국내 골프장 및 콘도사업 진출 교두보를 확보했으며, 무역회사도 설립해 중국사무집기를 수입 판매하는 계획도 타진 중이다.
16살 산골 소년 박성수가 무작정 상경 32년만에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 총수로 등극한 일대기이다. 가난으로 맺혔던 한은 풀어 돈에 대한 욕심은 없다. 이제는 사회에 환원하는 일만 남았다. 교육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박회장은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을 위해 성수장학회를 만들어 매년 학자금을 지원하고 고등학생 중 가정이 불우한 우수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주고 있다.
향후 박성수 장학재단을 설립한다는 꿈도 착실히 준비하고 있으며, 고향 주민들에게도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나중에 고향에서 회사를 경영하고 싶은 꿈도 갖고있는 등 자신의 뿌리인 고향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박성수 회장의 꿈은 계속 영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