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없다’ 자식같은 나무 캐내

군내 최대 포도 주산지 내북, 청암 포도작목반 폐원 속출

2004-02-28     송진선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안이 국회에서 가결돼 농민들의 영농의욕을 상실한 가운데 특히 포도 재배농가들은 거의 일손을 놓고 있다. 올해로 6년째 포도를 재배하는 군내 최대 포도 주산단지인 내북면 일원의 청암 포도작목반원들은 더 이상 포도로는 승부를 할 수가 없다면서 자식같이 정성을 들여 관리했던 포도과수원을 아예 폐원하는가 하면 일부 잘라내 다른 작목이라도 심어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등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재 군내 포도재배면적은 전체 77농가 37㏊에 이르는데 지난해보다 10㏊가량 줄어드는 등 매년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최근 2∼3년간 포도시세가 10㎏ 상자당 1만원대 이하로 폭락해 인건비와 농약·비료대, 운송비 등을 제하면 손에 쥐는 게 없었던 데다 특히 지난해에는 여름 내내 잦은 강우와 병해충까지 들끓어 포도를 제대로 수확하지 못해 각종 농자재비 및 영농자금마저 빚으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칠레와 FTA 비준안 국회 통과로 농민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의욕마저 빼앗겨 버렸다.

6년째 포도농사를 지은 성티리의 윤성현(66)씨는 2200평에 심겨진 포도나무를 모두 잘라냈다. 3년째 폭락한 포도시세 때문에 농협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데다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값싼 수입포도에 맞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채소라도 파종하려면 서둘러 밭을 갈아 엎어야 하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권영달(45, 도원) 작목반장도 포도나무를 자를 계획인데 6000평 중 1500평 정도를 다른 작목으로 전환하고 박두봉(58, 적음)씨도 5000평 중 500평의 포도나무를 없앤다는 계획이다. 김용정씨는 지난해 2200평에서 포도농사를 지어 거의 소득을 얻지 못해 포도과수원에 들어간 영농비도 건지지 못해 올해는 주말농장이라도 할 사람이 있으면 임대한다는 생각이다.

이같이 포도 주산단지인 내북면 지역에서 앞다퉈 작목 전환 및 포도재배를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농민들은 고품질 포도 생산을 위한 나름의 기술도 습득하고 고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됐는데 빚만 남은 상태라며 어떻게 빚을 갚아야할 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칠레와 FTA 비준안 가결로 한숨을 쉬는 것은 포도재배 농가뿐만 아니라 사과, 배, 복숭아, 감 등 다른 과수재배농가들도 마찬가지이다. 농민들에 따르면 오렌지 때문에 귤의 판매가 둔화되는 것처럼 소비자들은 비싼 국내 과일보다 값싼 가격에 들어오는 칠레산 포도를 먹기 때문에 국내 과일산업 전체가 도미노처럼 무너질 것이라며 농업위기를 걱정하고 있다.

권영달 작목반장은 먹는 양은 한정돼 있고 국내산 포도를 먹는 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싼 가격의 칠레산 포도를 실컷 먹은 소비자들이 국내산 과일을 먹겠느냐며 푸념했다. 그러면서 현재 칠레산 포도는 5월에서 6월까지 반입이 되는데 국내산 노지재배 포도는 보통 9월15일부터 한달간 수확하기 때문에 이 기간을 잘 활용하면 노지재배 포도가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한편 충북도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과 관련 피해가 우려되는 과수농가에 7년간 1천55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가온시설 포도 등 과수농가중심으로 향후 10년간 도내 과수농가들이 949억원의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 오는 2010년까지 712억원을 들여 505㏊의 과수원에 대해 생산시설 현대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과수원 규모 대형화를 위해 151억원을 지원하고 64억원을 들여 5개소 250㏊의 생산기반 정비사업을 펼친다. 이밖에 ▲과수전용 농기계 임대사업 30억원 ▲산지 유통시설 개선 120억원 ▲우량 묘목 생산 45억원 ▲과실 가공업체 현대화 사업 55억원 ▲우수 과채류 학교 급식비 100억원 ▲과수원 폐업 보상금 113억원 등을 지원하는 등 FTA 체결과 관련한 농가 피해 조사와 지원책을 마련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