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소리
2004-01-10 보은신문
아이가 10개월 쯤 되었을 때다. 꼬박 한달간 떨어져 있다가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돐이 되지 않은아이가 갓 배운 걸음마로 아버지를 잊지않고 품으로 달려와 이 어린것이 어느새 피붙이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로 엄청난 감동으로 남아있게 하는 식이다. 무등을 태워도 손으로 아버지의 머리를 잡지않고, 미끄럼을 타도 꽤 여러번 타본것 처럼 무섬탐 없이 그냥 내려오는, 어쩌면 아들로 태어났으면 그렇게 씩씩하게 키우고 싶었다는 것을 미리 알고 행동하는 막내 딸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바램을 미리 읽고있는, 눈에 넣어도 정말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그애의 이름은 ‘현희’다. 그 현희가 3살때 한번은 속리축전 불꽃놀이를 구경 시켜 주었는데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소스라치며 울어대서 혼이 났다.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 지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냈는데 이번에는 천둥소리만 울리면 새파랗게 질려 특유에 큰 울음소리로 집안식구들을 초비상 상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건 일년에 한번 볼수있는 불꽃놀이하고는 이야기가 많이 다르지 않은가?
그후로 천둥소리가 울리는 날이면 그소리가 끝날 때까지 지애미는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품에다 더 끌어 안으며 "괜찮다"는 말만을 연발하고 있어야 하는게 일과였다. 다른사람도 아닌 이세상에서 제일 나를 믿고 있는 현희가 처음으로 무서운 상대를 만났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어찌해야하나?...... 그 여름은 왜 그다지도 비가 많이 오는지, 어떻게 해결을 해야하나..?? 여러번 소동을 겪으면서 묘안을 짜내 보았지만 천둥과 번개는 내게도 벅찬 상대라는 것을 재삼 재삼 느낄 뿐 어떤 대안도 없이 지내는 어느날 또 천둥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아직 아무 생각도 없는 채로 있는데...... 무조건 이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집사람, 할머니, 언니둘은 이불로 현희를 감싸고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게 장막을 치고 있었다. 자지러지게 놀라고 있는 현희를 집사람으로부터 낚아채듯 들쳐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처마 밑으로 갔다. 컴컴한 낮, 쏟아붓는 비, 대낮같은 섬광, 파장을 만드는 엄청난 천둥소리. 그 앞에 현희를 세워 놓으며 나는 뒤에서 허리를 꼭 껴안았다. 눈앞에 펼쳐진 우뢰와 소리에 압도 당해서 인지, 예전처럼 아버지를 믿겠다는 것인지 울음을 멈추고 있었다.
“현희야!.. 저 소리가 천둥소리다. 천둥소리는 구름하고 구름이 부딪칠때 나는 소리다. 구름하고 구름이 부딪칠 때는 소리만 나는 것이 아니라 불이 나는데 그것을 번개 라고 한다” 그때 번개가 쳤다. “봐! 불이 났지. 하나! 둘! 셋! 소리야 나라!!” 천둥소리가 울렸다. “번개가 치고 세 번을 세면 천둥소리가 울리는 거다. 너도 한번 해 볼래?” 번개가 쳤다. “하나! 둘! 셋! 소리야 나라!!”천둥소리가 울렸다. 방통 했다는 듯 현희는 따라하고 있었다.
그날 현희는 이층에서 천둥소리가 끝날 때까지 하나! 둘! 셋! 소리야 나라!!을 외치며 온 방을 휘집고 다녔다. 그날이후 우리집에서는 천둥소리가 울릴 때마다 허우적 대던 대혼란은 더이상 만날 수 없는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추억속에 일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 일을 자주 상기하며 혼잣말을 한다. “현희야.. 네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절대 피할 수 없는 소리란다. 세상을 살다보면 천둥소리 보다 더 험한 소리를 무척나게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당당히 맞서 스스로 극복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몇년 사이에 자가용이 많이 늘었다. 초등학교 앞에 사는 관계로 부모님들이 차로 등교시키는 것을 자주 보면서 저렇게 하면 안되는데...하였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학원, 1000미터도 안되는 독서실에서도 부모님를 호출하여 집에까지 차를 타고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보은, 그 미래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보은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지금에 청소년들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다는 분명한 사실앞에, 천둥소리에 참연하게 떨고 있는 유약한 아이로 키우는 것은 보은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기 위해 선약을 하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하겠다.
가정을 위해서나 보은을 위해서나 아이들을 번개치는 빗속에서 홀로 설 수 있도록 하자.눈, 비, 바람, 다 맞으며 살다 보면 얻어 지는것도 많을 것인 바,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빼앗지 말자. 아프지 않고 어떻게 성숙할 수 가 있단 말인가? 간과하지 말자.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이미 어른이 돼 있으며 우리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고 고뇌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바라보고 부모들의 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불필요한 간섭을 하지 말도록 하자.
우리의 아이들이 이땅을 강하게 딛고 섰을때, 정정당당한 심성으로 가슴을 무장하였을때, 영원히 실현 될것 같지 않아 보이는 지금에 우울한 보은은 몇십년 후면 반드시 일어 날 것이다. 이 글을 만나는 사람은 토를 달지 말자. 이글을 쓰는 사람도 딸만 셋 키우면서 마음같이 되지않아 애를 많이 태우는, 아이들보다 자기 잘못이 더 많다는것을 잘 알고 있는 범부일뿐 이라는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