賭癖을 끊을 수 있는 용기를 만나던 날
정구필(보은 BBS회원)
2003-12-06 보은신문
오랫동안 찾지 못하다가 지금쯤 고향 땅에서 크게 성공한 일꾼으로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던 내가 그를 다시 본 것은 작년 봄 금산중앙초등학교 총동문 체육대회가 있던 날이다.그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반겨 주었는데 그동안 내가 그려왔던 친구의 모습이 아니어서 놀라움을 애써 감추며 손을 잡았다.
대회가 끝나고 세상을 향해 억울한 눈빛을 하고 있는 그가 술 한잔 사 줄수 있냐고 해서 선술집을 찾았다. 걸핏하면 내쉬는 한숨으로 힘든 삶의 무게와 총기 잃은 눈빛으로 앞으로의 이야기를 대충은 짐작할수 있었다. 그는 그동안 벌었던 많은 재산을 주식과 도박으로 다 날렸다고 했다. 그 즈음에는 장사마저 흥미를 잃어 컴퓨터로 바둑두는 것이 유일한 취미라며 데이트레이딩과 도박과 삼,사십판씩 두는 바둑으로 엉덩이가 헐어 진물까지 흐른다고 했다.
"부모는 자식들을 꼭 책임져야 되는 것이냐"고 묻고, "늙으신 부모님도 귀찮게 생각이 드는 것은 왜냐<&28813>고, <&28799>보험 들어놓고 죽고 싶은데 이해 할수 있겠냐<&28813>고, 도둑질 이라도 하고 싶다고, 내가 대답하기 곤란한 아니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만 던져 놓을 만큼 그는 이세상 사람의 가치와는 너무도 다른 세상에서 절망하고 있었다. 하루 몇천만원을 잃기도 하고 벌기도 하는 주식투자로 한시 한초도 피할수 없는 극도의 공포감에 쫓기며 5년의 세월을 지냈다고 했다. 이제는 더 할돈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는 친구는 그 괴물을 한번은 이겨야만 이세상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며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말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내리고 있었다.
상한가와 하한가의 화살표 처럼 끝간데 없는 공허감으로 둘러쌓여 있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어리석은 싸움은 계속하지 말라고 마음고쳐 먹자고 말하고 밤이 늦어 그의 어깨에 있는 짐을 조금도 덜어 주지 못한채로 집에 바래다 주고 돌아서 왔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후 그를 다시 만난 것이 얼마전 선배 상가 집에서 였다.
그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30년 전 우리를 놀라게 했을때 처럼 그의 눈은 감히 바라볼 수없을 정도로 다시 이글거리고 있었다. 단단한 말투, 압도하는 눈빛, 자신에 찬 미소, 도대체가 일년전 죽음을 희망하고 삶을 고통스러워 했던 그가 이렇게 대변신을 한것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어 이번에는 내가 술 한잔 하자고 그를 붙잡게 되었다. 어떻게 된거야? 내 물음에 천천히 그는 입을 떼었다.
장사를 그만두고 시골로 들어가서 남은 인생 있는 재산으로 그럭저럭 살기로 마음먹고 가게 정리 를 하려고 했었는데, 친구가 하는 가게 옆에 비어있는 큰 창고를 대전 사람이 매입해 동업종의 가게를 차리고 부터였다고 한다. 옆집 가게의 부부가 아침 6시부터 9시까지 열심히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까 돈만 아는 사람들 이라기보다 아름답게 느껴졌고, 어릴적 물 불 안 가리고 일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샘도 나는 것이 장사 30년 했다는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허송으로 세월을 보낸 자기가 후회가 되었다고 했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이렇게 끝날 수는 없다고 다짐하고 주식, 바둑, 도박, 그리고 술과 담배까지 끊고 대전 나가는 쪽에 있는 아는사람 땅 1000평을 세 내어 모을 수 있는 돈을 죄다 모아 그 사람보다 더 크게 가게를 차리고 억척으로 장사만 했다고 했다. 마음먹고 달려드니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고, 지금은 전주까지 무주와 진안, 장수까지 시장을 개척하여 거래를 하고 있다며 2억에 가까운 부채를 일년만에 전부 갚았다고했다. 살고 싶지않은 기분에서 이렇게 기운을 차리고 보니 세상이 편하게 보인다고 했다.
반십년의 그 침울하고 처참한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사람이 이웃으로 이사와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해서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수렁에서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못했던 자기를 구해 주었다고 했다.
역으로 그동안 기죽고 한숨쉬며 막막함으로 살아온 자신의 과거의 일상은 자기도 죽고 싶도록 괴로웠지만 가족들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모든 사람을 본의 아니게 살맛 나지않게 하는 사회병이었던 것을 이제야 알았다며 자신이 열심히 사는것은 침몰했다 다시 부상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좌절하는 이웃들에게 힘을 주고 뒤쳐지는 친구들을 독려하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상상이 안가는 개벽에 아무말을 못하고 있는 내게 이런 말을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식사를 할때 입맛을 나게하는 상대가 있는가 하면 맛이 없어지게 하는 사람도 있지. 술을 먹을때도 술맛이 나게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술맛이 떨어지게 하는 사람도 있지. 그런데 말야!.. 인생의 맛. 살맛나는 인생을 만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편안한 이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네. 난 그런 이웃으로 살고 싶네. 이것이 내가 죽는날까지 열심히 일하기로 작정을 한 이유라네. 노는건 저승에서도 얼마든지 할수있지 않겠나?"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곧지않은 고향길 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자기가 자기 마음대로 살수 없는 이유를 찾은것 같기도 하고, 왜 남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 지를 알것도 같다. 내가 잘사는 것이 남을 잘살게 하는 것임을 알듯도 하고, 남을 헐뜯는 것이 나를 욕하는 것임을 알 것도 같다.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는 마음이 얼마나 우리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처참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알듯도 하다. 놀기만 하는 사람들이 왜 지탄이 되는지 알 듯도 하고. 새벽에 힘겨운 눈꺼풀로 집에 들어가는 나에게 보여주던 이웃들의 웃음이 무슨 뜻인지 알듯도 하다. 팔십 먹은 어느 할머니의 몇푼 안돼 보이는 콩타작의 의미도 그게 돈이 아니고 살아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을 알것도 같다. 벌써부터 중 늙은이 행세를 하며 열외 하려고 하는 시건방진 친구들에게 우리는 죽는 날까지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늙거나 병들 수 있는 자유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명분을 찾기도 한것 같다.그날은 알것도 참 많기도 했던날이다.
그리고 생전에 당신께서 그렇게도 원하셨던 도벽을 끊을수있는 용기를 만난 날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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