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깨우친 후 인생이 달라졌요”
소중한 글 상 수상한 아사달 한글 배움터 김 순 옥씨
2003-11-29 송진선
김순옥씨는 “지난 3월부터 농사 때문에 다니던 아사달 한글 배움터를 잠시 중단했던 터라 그동안 배운 것도 까먹고 해서 대회에 나가는 것조차 망설였었는데 상을 받아서 너무 좋다”며 “무엇에 대해 썼는지 시간이 많이 흘러 다 잊어버렸다”며 수줍어했다. 한글 문해의 해 기념 한글 날 글짓기 대회는 전국 문해(文解)·성인 기초 교육 협의회에서 정부의 문해 학습권 보장을 위한 정책 제안을 위해 올해 처음 개최한 것이다.
전국 문해·성인 기초교육협의회는 삶결 마당 아사달 한글 배움터를 비롯해 전국 4권역 23개 문해교육단체가 모여 결성된 것으로 빈곤, 전쟁 등 사회적 상황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문해’(문자해독, 문화이해, 문화해방) 교육을 전개하고 있다. 10월 9일 대회엔 김순옥씨와 같이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있는 어머니 354명이 참여해 배움을 통해 얻은 것과 달라진 삶에 대한 느낌을 글로 표현했다.
김순옥씨는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청와대 방문에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같은 처지의 어머니들과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느라 시종 일관 웃음꽃을 피웠고 정성스레 깎은 연필을 꼭 쥔 채 힘주어 눌러 쓴 글엔 그간의 삶이 응어리져 있었다. 김순옥씨는 2001년 한글 배움터의 학생모집이라는 광고를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기쁨에 며칠 간은 잠도 못잤을 정도로 흥분이 됐다고 한다. 1주일에 3일씩 오전 10시에서 낮 12시까지 하는 수업시간을 지키기 위해 남보다 일찍 일을 마치고 부지런히 움직여도 농사때문에 빠지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집에 와서도 복습하고 남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오기를 갖고 공부했다. 한 자 한 자 깨우쳐 가는 즐거움에 농사로 피곤에 지쳐도 밤에는 다시 복습을 하고 잠을 자기 위해 누운 이불 속에서도 손가락으로 글자를 써볼 정도로 열중했다. 처음 물어서 타던 시내버스도 알아서 타고 간판을 읽다가 시내버스를 놓친 적도 있는 등 에피소드도 많았던 김순옥씨는 한글을 뒤늦게 배우고 가슴의 한이 풀렸고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구구단도 스스로 터득했고 요즘은 딸이 사다 준 콩쥐팥쥐와 같은 동화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김순옥씨는 지난해부터 가계부도 작성하고 있다. 그동안 소, 돼지, 염소, 개, 오리 등 가축들과 농사(5000평)짓느라 중단했던 한글 학교도 12월부터는 다시 나갈 계획인 김순옥씨는 “배움의 기쁨을 알려주신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너무 고맙다”며 “나이가 있으니까 다른 공부는 제쳐두고 한글만이라도 막히는 글자 없이 술술 읽으면 원도 한도 없을 것 같다”는 바람을 말했다.
부산 태생으로 부산에서 살다 탄부면 벽지리로 이사한 지 29년 째인 김순옥씨는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