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이/야/기’담/은/가/을/기/행

내북봉황 한국 예술과학원 MBC 구상조각전 대상작 전시

2003-10-25     송진선
가을바람에 낙엽된 갈 빛 나뭇잎들이 발아래서 뒹구는 가슴 허전한 계절이다. 은빛으로 일렁이는 억새, 쑥부쟁이·구절초 향 그윽한 만추에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꾼다면 내북면 봉황리 한국 예술과학원으로 가보라.

산 초입에 들어선 건축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한 한국 예술과학원(원장 김문경)에 가면 인간의 연애심리를 조각으로 엮은 ‘연애이야기’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회는 MBC 한국 구상 조각대전에서 역대 대상을 수상한 작가 11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것으로 보은에서는 감상조차 할 수 없는 작가들의 작품이다.

연애이야기는 우연히 스치다→서로 탐색하다→꼬리치고 유혹하다→갈등하다→서로 사랑하다→행복한 미래를 꿈꾸다→발등을 치며 후회하다→심하게 다투다→닭 소보듯 무관심해지다→그래도 허전해하다→일상으로 되돌아오다 라는 연애과정을 조각작품으로 엮고 있다. 연애 과정별 전시된 조각 작품에 ‘사주/관상/궁합봐 드립니다 라고 써붙인 길거리 좌대에라도 무작정 앉아보고 싶은 심정이다. 연애상담 전문이라고 자부하던 친구들은 그래도 연애 걸어오는 사람이 있을 때가 행복한 거라느니, 마음이 시키는대로 하라느니 하면서 좀 무책임한 대안을 슬그머니 제시하지만 그래도 실패하는 것은 여전히 두렵다’라는 식의 스토리로 엮어 흥미를 더해준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한국 큐레이터연구소 한미애 소장은 “연애란 드라마나 영화에서 지긋지긋하게 우려먹은 고전적인 소재이지만 누구나 한 번쯤 낭만적인 연애를 꿈꿔보는 계절 가을에 작품 하나 하나의 장면성을 강조한 스토리보드 식의 구성과 줄거리를 따라가는 흥미로운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내 얘기, 내 추억을 하나쯤 발견해서 변화무쌍하고 현란한 현대미술까지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흙묻은 신발을 신었다고, 조금 낡은 옷을 입었다고 전시회장 입구에서 막는 사람은 없다. 간간이 작품감상 온 주민들을 오히려 따뜻하게 맞이한다.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진 고상한 사람들이 찾는 것이라 지레 겁먹고 감히 꿈조차 꿔보지 않았던 보은촌놈(?)들이 갤러리를 찾는 사치를 나무랄 이 누가 있겠는가. 자칫 인생의 허무함에 빠질 수도 있는 이 가을, 무력감에 빠질 수도 있는 일상을 즐거움으로 채색하는 기행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작품 제작과정도 구경할 수 있고 잘하면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을 만나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