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탐방 체험학습장으로 거듭난 운봉 서각·도예 공방

도자기 빚고 목판인쇄 체험도 하고

2003-10-11     송진선
96년 농어촌 특산단지로 지정받아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호응을 얻을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공방의 주인장인 서각에 능한 박영덕(40, 외속 오창)씨 또한 열심히 노력을 하지만 노력만큼 결과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서각의 대가인 동천 송인선선생에게 사사받아 서각에 입문하고 청주 고인쇄 전수관 오국진 선생의 이수자로 등록돼 전수 조교로 출강하는 박영덕씨의 실력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서각이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주인장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조차 제대로 갖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눈물겨운 나름의 사회 적응 훈련기간을 5, 6년간 보내고 난 뒤 공방 활성화 차원에서 가마를 짓고 도자기 실습장을 운영하면서 운봉 서각공방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문화 체험장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하고 특히 학생들의 현장 학습장으로 대인기다.

속리산 가는 길목의 국도 37호선변 외속리면 오창리 오심(悟心)이 마을에 자리잡은 운봉 서각 도예 공방이 지역의 또다른 명소로 정착된 것이다. 터를 누르고 있는 장승과 20여기의 돌탑이 울타리를 만들고 수형이 아름다운 노송도 정리는 되지 않았지만 공방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본 건물에 도자기 제작 실습실과 1루베 규모의 가마를 갖추고 있고 서각 및 목공예 전시장 등 100평 가량 되지만 작업공간이 부족해 조립식으로 건물을 덧대 건축, 전시물을 빼내 전시장까지 작업공간으로 활용할 정도다.

현재 운봉 서각 도예 공방을 이용하는 학생만도 1년 줄잡아 1500명 가량 된다. 한달 100명꼴이다. 군내 어린이집에서부터 유치원,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체험 학습장으로 이미 정착됐으며 이젠 청주로까지 영역이 확대됐다. 지난 7일과 8일 청주 우암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학생 300여명이 이곳을 찾아 도자기도 빚고 목판을 찍는 체험을 했다. 운봉 공방의 소문을 듣고 학교에서 직접 외속리면 오창리 공방을 답사한 후 아이들의 체험장으로 낙점한 것이다.

아이들을 인솔해온 청주 우암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도자기를 빚고 목판 찍는 것은 학교에서 하기 어려운 것으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경숙(6학년) 학생은 “너무 재미있다”며 “시계를 만들었는데 시간이 잘 맞을지 모르겠지만 기념으로 방에 걸어놓을 것”이라며 뿌듯해 했다. 도자기 체험은 공방의 고정 프로그램으로 시계, 접시, 컵 외에 학생들이 아무것이나 만들 수 있도록 흙덩어리를 주어진다.

그러면서 박영덕씨는 아이들에게 물렁물렁한 흙은 맘대로 할 수 있지만 일단 만들어 놓은 것이 굳으면 맘대로 하지 못하고 바꾸려다 부서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목표를 세워 매진해야지 처음에 목표를 잘못 세워 놓고 나중에 바꾸려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자칫 실패할 수도 있다며 열심히 공부할 것을 주문한다.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는 해인사나 청주 고인쇄 박물관 등에서는 5000원에서 많게는 8000원까지 이용료를 받는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무료로 체험하게 한다.

한지 값만 해도 만만치 않지만 목판 체험은 아이들에게 서각을 알리는 중요한 시간으로 옛날 인쇄 방법인 목판인쇄 가르치기 위한 박영덕씨의 고집 때문이다. 목판은 글씨를 거꾸로 새겨야 한다. 먹물을 목판에 묻히고 그 위에 한지를 올려 눌러 인쇄하는 목판인쇄를 체험하게 하면서 탁본과 다르다는 것도 가르친다. 탁본은 비석이나 편액, 현판 위에 한지를 올려놓고 그 위에 물을 분사해 밀착시킨 후 먹물을 묻힌 솜방이를 두드려 비석 글씨를 찍어내는 것임을 일일이 설명,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도 술술 나온다.

박영덕씨의 가르침을 받으며 가훈이나 고구려 벽화인 사신도, 월인천강지곡, 직지 등이 새겨진 목판에 먹물을 묻혀 인쇄가 잘 되도록 정성을 기울이는 아이들은 이때 만큼은 초고속 레이저 프린터를 잊을 정도로 푹빠져 있다. 박영덕씨는 앞으로 장승 깎기 프로그램을 더하고 부족한 작업 공간을 확충해 더 많은 사람들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상, 운봉 공방이 생활 속에 녹아든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