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산국내 돌거북 고증 필요

교원대 정영호씨 "조선시대 유물 추정"

1995-09-30     보은신문
삼산국민학교(교장 송두영) 정문입구 좌측에 위치한 개교기념비를 떠받치고 있는 돌거북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 교원대학 정영호씨(60. 문화재위원, 국사편찬위원)에 따르면 "돌거북의 모양이 위엄있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맛이 있고 크기 또한 장엄하지 못해 지역유지에의해 건립된 조선시대 (17C)의 유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돌거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신라시대부터로 고려시대를 거쳐 유교를 국교로 삼는 조선시대에 오면서 위엄을 갖추었던 돌거북이 서민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꿈을 표현하는 모양을 보였다고 한다. 아울러 민속신앙과의 접목을 통해 자손의 번창과 생식의 왕성함을 상징하는 기자석과 이름있는 고승의 부도비로써의 성격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

삼산국민학교에 있는 돌거북의 모양은 키가 1m를 조그넘는 왜소한 체구로 얼굴모습도 근엄하기보다는 하회탈을 연상할 만큼 서민적인 인상을 뜨고 있다. 특히 거북귀자를 써서 남자의 성기를 상징했던 거북머리 부분이 몸통에 비해 큰 편이고 목부분을 두르고 있는 연꽃 모양의 문양이 연꽃 무늬냐 아니면 장식을 위한 하나의 문양에 불과하냐는 의문점을 제기하게 만든다.

하지만 돌거북 등위에 홈(비좌)을 파고 그 안에 비석처럼 세운 비신이 사라지고 현재는 71년도에 다시 세운 것임을 입증하는 개교기념비가 세워져 있기에 정영호씨는 "기존에 세워져 있던 비신을 찾아야만 누가 이것을 만들었고 어떠한 역사적인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지도 알 수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이 돌거북은 1911년 보은 현감에서 보은 삼산 국민학교로 옮겨진 것으로 드러나 당시 이전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만이 돌거북위에 비신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디에 버렸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는 실정이다. 돌거북 비신의 행방을 알수만 있다면 그외 여부에 따라 돌거북의 역사적인 가치가 평가될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산교육으로의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