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단상

최규인(보은여고 교사)

1996-12-21     보은신문
가을걷이가 끝난 논과 밭은 조금은 허전하면서도 평화롭기가 그지없다. 자신의 피와 살을 정기로 뭉쳐내어 황금빛 결실을 맺은 후 그 모든 결실을 몽땅 아무 조건없이 인간에게 내어주고서도 대지는 저렇듯 담담하게 다음 봄을 기달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대지를 어머니에 비유하며 거룩하게 여겨왔던 것이 아닐까? 그 어머니 대지위에 우리 농민들은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정직한 땀을 쏟아 부었다.

계절이 갖고있는 독특한 생명력을 그대로 삶의 원천으로 삼아야하는 농민들로서는 이제야 비로서 대지와 더불어 휴식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올해는 벼농사를 비롯해 모든 작물이 대풍작을 이루었으니 이 겨울은 마땅히 풍요로운 휴식기간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즈음 농촌 분위기는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마치 시골 동네에 썰렁하니 남아있는 주인 떠난 빈 집들 처럼 우리들 삶의 터전 곳곳에 허전함이 배어있다.

대관절 그 무엇이 한가로와야할 우리 농촌을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이유는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터무니없이 낮게 결정된 추곡수매가와 농산물 가격의 폭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터무니없이 낮게 결정된 추곡수매가와 농산물 가격의 폭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외에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는 소값도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올해 추곡수매가는 오직 4% 인상되었다.

그것도 내년 가격을 동결시킨다는 전제아래 그렇다. 반면 각종 영농비는 크게 뛰었다. 농촌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교육비 또한 심각한 실정이다. 97학년도 사립대학 입학 등록금이 300만원을 넘을 예정이라고 한다. 300만원을 쌀로 환산하면 20가마니가 넘는다. 1년에 두번등록금을 내어야하니까 쌀 40가마가 필요한 셈이다. 올해 처럼 유례없는 대풍이 든다해도 쌀 40가마니를 생산하려면 최소한 200평이상의 논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것도 영농비가 한 푼도 들지 않는다는 환상적인 전제아래서 그렇다.

자본주의 국각에서는 일한 만큼 댓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회는 유질 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농업만큼은 농민들의 정직한 노력이 정당한 댓가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농민들을 불안하게 하며 농촌을 황폐화시키는 요인이다. 국민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면서 힘든 일을 마다 않는 농민들의 노력을 충분히 보상하지 않으면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다는 것은 모래위의 누각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모든 농업정책이 최우선 목표를 농가수입의 안정화에 두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농민들 또한 자구적인 자세를 갖추어야만 하겠다. 과잉생산에 대한 아무런 대비책 없이 그져 농사만 열심히 짓는 더이상 미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노력과 농민들의 슬기로움이 함께 어울려서 풍요로운 농촌을 이루어 나갈 때 비로서 농민들은 거룩한 주인공이되며 농촌은 어머니 품속처럼 푸근한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