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보은 창변경찰 요원 이상걸씨

영원한 민중의 지팡이

1996-12-14     보은신문
경찰직에 32년간 근무하다 퇴직한지 21년째지만 아직도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보은 창변경찰 요원이 이상걸씨(71, 보은 월송). 이상걸씨는 창변경찰에 대해 "은폐된 곳에서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며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일들을 신고·계도하는 요원"이라고 정의한다. 창변경찰은 주병덕 충북도지사의 특별시책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행되고 있다.

만 60세이상의 공무원출신들이 경찰 퇴직자의 모임인 대한민국 재향경우회의 도움 속에서 군수의 위촉을 받아야 비로소 창변경찰이 될 수 있다. 이상걸씨는 현재 대한민국 재향경우회 보은지회장이기도하며 보은 창변경찰 요원 26명 모두가 경우회원들이다. 그를 비롯한 창변경찰 요원들은 일선 공무원들이 귀찮아 할 정도로 신고도 하고 계도도 한단다. 그러나 그는 항상 동료들에게 "가급적이며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오히려 창변경찰이라는 직위(?)를 이용하여 주민을 못살게 굴면 절대 안된다"고 자주 얘기한다.

또 근무일지도 써서 결재를 받기도 하는 등 현직 공무원들과 흡사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는 70을 넘긴 나이지만 그누구보다도 젊은 패기있어 보인다. 경찰직을 그만둔 후로는 단 한번도 병원 문을 두드리지 않았을 정도로. 농사도 직접지으며 검소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비결같은데도 그는 '부모님이 건강한 체질로 낳아 주셨기 때문'이라며 그의 부모 덕으로 돌린다.

그는 삼산초등학교(27회)를 졸업한 후 일본 오오사카 공업학교에 입학, 2년을 다니다가 경제사정으로 그만둔 후 내북면 서기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해방후 그는 경찰에 몸바치기로 결심을 하고 19세에 투신해 쌀 한가마니 정도의 보수를 받으며 사회질서 유지에 온 정성을 쏟았다. 경찰 재직중에 그의 성실성 등이 인정돼 근정포장을 수상한 바 있는 그는 만 50세에 경찰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현직 경찰에서만 물러난 것이지 완전히 경찰의 임무에서 떠난 것은 아니었다.

경우회와 창변경찰로 그 명맥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군내에는 보은외에도 내속리면에 16명의 요원들로 구성된 창변경찰이 조직되어 있다. 사단법인 한국담배판매인회 보은조합장이며 가평 이씨 종친회장이기도 한 이상걸씨. 그는 3남2녀 모두를 필혼시키고 어머니 곽재순씨(95), 부인 장영자씨(67)와 농사를 지으며 작은 슈퍼도 운영하면서, 언제나 영원한 민주으이 지팡이로서의 사명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