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반세기 기념특집 보은의 어제와 오늘
국민학교 10곳 폐교
1995-09-16 보은신문
우리사회의 전통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서원은 고종 8년(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고, 향교 역시 고종 31년(1894년)에 과저제도가 없어지자 쇠퇴해 1910년 보은 향교 2백54명, 회인향교 82명의 유림수를 기록했으나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옛성현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문묘로서의 기능만을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당만은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으로 점차 줄어들었음에도 1930년 당시 군내에 30개 서당에 30명 훈장이 2백54명의 학동을 가르친 것으로 나타났으며, 광복당시에도 그 세를 유지했으나 전쟁으로 그 세를 유지했으니 전쟁으로 그 명맥이 끊겼다.
신교육으로는 1905년 사립완명학교(현 삼산국민학교)가 세워졌고 1906년 사립 진명학교(현 회인국민학교)가 세워졌다. 이후 1911년 일제의 조선교육령 발표로 기존의 2학교는 공립보통학교로 바뀌고 그후 1945년 광복까지 관리공립보통학교(현 관기국민학교)등 13개 보통학교(명칭변경으로 보통학교→소학교→국민학교)가 세워져 보은의 국민학교는 삼산국교와 회인국교 등 총 15학교였다. 또한, 군민들의 중등학교 설립운동의 결과로 4년제인 보은공립농업학교(현 보은농공고등학교, 현재의 중·고 과정)가 1944년에 세워졌다.
광복 이후에 국민학교는 15개교에서 1975년 36개교(분교1교)까지 늘어났으나 1995년 현재 21개교(분교8교)로 감소했다. 교원수는 1백10여명에서 1975년 4백81명까지 늘었고 현재는 2백54명으로 감소했다. 학생수는 7천여명에서 1975년 2만98명, 현재는 3천5백99명으로 광복 당시보다 절반가량, 75년과 비교해서는 82%나 줄었다. 중등 이상의 교육기관으로는 광복당시 보은공립농업학교 1개교에서, 보은중(51년 학제개편으로 보은여중과 농업학교 2, 3학년으로 설립), 속리중(46년), 보덕중(53년), 보은여중(61년), 회인중(64년), 원남중(69년), 내북중(71년) 등 7개중학교 1백57명 교원에 2천5백80명의 학생으로 늘어났다.
고등학교는 보은농공고, 보은여고(61년), 보은고(75년), 보은상고(79년) 등 4개 고등학교 1백41명 교원에 2천3백24명 학생으로 늘었다. 한편 군내에서는 10개 국민학교 및 분교가 유소년층 인구감소로 인한 폐교의 비운을 겪었는데 82년에 외속장재분교, 89년에 회북 회서국교, 91년 회남 법수국교, 92년에 회북 회룡국교, 산외산대분교, 회남 분저분교, 94년 마로 기대국교, 회북 회동국교, 95년 마로 소여국교, 마로 적암국교가 폐교되었다. 유치원은 1994년말 현재 23개원에 38명 교원, 7백76명의 원생이 있다.
94년말 현재의 취학과 진학을 보면 국민학교는 대상자 9백2명 중 9백명이 취학했으며, 중학교는 대상자 9백55명중 9백35명이 입학하고 졸업자 9백54명 중 9백47명이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고등학교는 8백48명이 입학한 것으로 나타났고, 일반계 고등학교 졸업자 3백90명중 1백6명이 대학 및 전문대학으로 진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