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반세기 기념특집 보은의 어제와 오늘
회남 인구감소율 가장 높아
1995-09-02 보은신문
보은의 가구수는 93년말 현재 1만4천9백50호로 전쟁직후인 1954년의 1만6천5백3호에 비해 9.5% 줄었다. 이는 30%에 가까운 인구감소에 비해서는 적은 수치인데 청장년층이 노년층을 농촌지역에 남겨둔채 도시로 이주했다고 풀이된다. 읍면별 인구의 증감을 보면, 보은의 인구가 가장 많던 65년과 대비해 볼 때 군전체는 51.2% 감소했는데 보은읍은 6.4% 감소에 그친 반면 회남면은 83.9%, 내북면은 74.2%, 회북면은 68.2%나 감소했다.
보은읍이 이처럼 가장 낮은 인구감소율을 기록한 것은 보청천 유역의 넓은 경지와 도시적 성격을 갖는 농업중심지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구의 유출이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회남면의 경우 가장 높은 인구감소율을 보이는 것은 80년도를 전후해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사탄, 어성, 매산, 송포, 용호리 등의 13개마을이 일부 또는 전부 수몰되고, 그 인근 지역 역시 생활의 기반인 넝경지의 수몰로 극심한 인구의 유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남면은 수몰 직전인 79년 통계에 따르면 8백57가구-3천9백27명 이었으나, 수몰후인 80년 말에는 5백55가구-2천3백68명으로 크게 줄었다. 내속리면은 37.2%의 비교적 적은 감소율을 보이는데 이는 속리산 국립공원 조성에 따른 경기 활성화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인구의 유출로 인해 94년말 보은의 인구는 4만9천8백91명으로 충북지역 인구의 4%에 머물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회남면의 경우 93년말 현재 인구가 1천1백36명로 보은읍의 1만9천77명의 6%에 불과해 인구밀도가 1평방킬로당 27명으로 충북의 1백86명, 보은의 95명에 비해 극히 희박하다.
전입률 역시 7.3%로 지난 65년의 2.0%에 비해서는 늘어났지만 75년의 10.8%을 기점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출입자의 수를 비교하면 65년 전입 2천2백95명에 전출 3천2백34명에 비해 93년 전입 3천8백6명에 전출 6천2백65명으로, 전입자의 수가 늘어났어도 전출증가를 가져왔기에 인구의 감소현상은 여전하다. 이처럼 보은의 인구감소는 청장년층의 노동력을 흡수할 만한 경제적 기반이 부족하고 또 자녀의 더 나은 교육환경을 찾아 도시로 이주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지만, 인구의 자연증가 역시 가족계획사업(산아제한)의 성과로 60년대 이후 점차 줄어 90년 처음으로 출생 7백36명에 사망 8백22명으로 역전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93년의 출생자 수를 보면 회남면의 경우 5명, 외속리면과 탄부면, 수한면이 각각 24, 26, 27명 출생하는데 그쳤다. 이러한 출생률의 감소는 90년대에 국민학교 10개 분교의 폐교를 가져왔고, 사회문화적으로는 가구별 인구수 감소로 나타나는 핵가족 의식의 확산과 어우러져 이혼률 역시 광복 당시의 0%, 65년의 0.2%에 비해 93년 현재 1백20쌍 4.6%로 크게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