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우끼시마호 사건 방송한다

보은·영동등에서 일본만행 진상규명위한 취재활동 벌여

1995-07-15     송진선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고 일본군으로 강제 징용당했던 한국인이 본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승선한 우끼시마호가 폭침, 많은 희생자를 냈던 사건이 광복 5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서도 진상규명을 위한 운동이 미약하나마 전개되고 있다. 당시 이 전쟁에 참가했다 희생당한 생존자나 유가족들은 그 동안 끊임없이 일본 정부에 진상규명과 함께 진사와 배상을 요구해왔다. 지리한 투쟁을 계속해 오고 있는 이들은 일본정부의 무성의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진상조사와 배상을 해야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아직 일본에서는 국가차원으로 어떠한 진상규명의 움직임이 없고 일부 일본 민간인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일 일본의 아오모리 방송국에서는 오다가리노부고씨(여, 보도국 기자)와 통역원을 보은군을 비롯 인근 영동군에 파견해 우끼시마호 사건 희생자에 대한 취재활동을 벌였다. 지역 방송국인 아오모리방송국에서 우끼시마호 폭침사건에 대해 취재한 것은 전국적인 방송망을 갖추고 있는 일본의 문화방송망을 통해 오는 8월21일부터 10일동안 저녁6시에 전국으로 방송된다.

아오모리 방송국 관계자들은 이날 본사를 방문해 우끼시마호 폭침사건의 생존자인 서봉구씨(70, 외속 하개)와 유족인 나대찬씨(60, 보은 누청)로부터 사건 당시의 상황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청취했다. 서봉구씨는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증언하면서 희생자와 부상자에게 일본정부는 그 동안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양심적인 태도로 잘못을 사과하고 국가차원의 배상을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나대찬시는 자신의 형인 나두찬씨가 당시 24세의 나이에 징용당해 우끼시마호 폭침사건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가족이 겪은 슬픔을 기억하며 비통해 하기도 했다.

특히 생존자로 인터뷰를 한 서봉구씨는 20세도 안된 나이에 태평양전쟁에 강제 징용당해 일본을 위해 싸우다 다시 본국으로 돌아올 때는 자신이 탔던 우끼시마호가 폭침을 당해 큰 부상을 입어 장 절단 수술을 받는등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한편 우끼시마호는 1945년 8월24일 북해도 인근 아오모리항에서 징용당한 수많은 한국인과 노무자 가족을 태우고 본국으로 돌아오는 도중 일본 경도 근처 마이쓰루만에서 의혹에 쌓인 폭침으로 수많은 한국인을 수장시켰고 살아남은자 또한 정신과 육체가 썩어가는 고통으로 최후를 맞고있는 문제의 바로 그 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