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당신의 눈물
신종순(수한 후평)
2003-07-26 보은신문
몇 해전 난 딸아이로부터 그동안 잊고 지내던 나의 아버지를 다시 찾았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이가 나에게 찾아준 나의 아버지 당신은 나의 유년시절에는 엄격하고 항상 오빠와 비교하여 절 키우셨죠.
어느 날 아버지의 사업실패에 이어 어머님의 죽음을 겪어야 했습니다.저는 그 때부터 당신에게 아버지라 부르기를 거부하였고 반항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세분의 어머님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때마다 난 모든 것이 싫었고 달팽이가 되어 내 자신을 가두고 숨어 지냈죠. 마음의 빗장을 꼭꼭 걸어 잠그고....... 세월의 무상함에 그렇게 믿었던 아들마저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고 가출하여 훗날 며느리와 손자만을 맡겨놓고 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렸죠.
그때도 당신은 무정하리 만큼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저 먼 하늘만 멍하니 쳐다보고 너무도 가슴 깊은 한숨을 쉴 뿐 목석 같았던 아버지...... 혼자된 며느리가 안타까워 손자를 맡으시고 그 며느리를 다시 시집 보내셨던 그 마음 그땐 정말 몰랐습니다.
당신이 가슴으로 흘린 눈물이 내를 건너 바다를 이룬 다는 것을... 까만 밤 새벽이 올 때까지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리셨는지 몰랐습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세월 지나 나 또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도 여전히 아버지의 존재를 부인하고 당신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지금의 어머님은 내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주시고 항상 저에게 이제 그만 아버지를 용서하고 편히 살라고 하셨지만 그것 마저 난 거부하고 살았습니다.
아버지의 칠순 날 난 마음에도 없는 잔치를 베풀었고 당신은 모든 분들에게 딸에게 칠순상을 받아 얼마나 좋으냐는 인사를 받으실 때 당신이야말로 가시 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날 밤 피곤하여 일찍 딸아이를 안고 잠이 어설프게 들었을 때 가만히 방문을 열고 들어오신 아버지......
무릎을 꿇고 나의 손을 살며시 잡으시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시면서 너에게 좀 더 공부시키고 잘해 주지 못해 용서를 빈다......
그 말씀 끝에 손등에 떨어진 눈물. 정말 뜨거웠습니다.
저는 그 날 알았습니다. 용광로의 쇳물보다 더 뜨거운 것이 아버지 당신의 눈물인 것을......
그래도 내 마음의 문은 끄덕도 않았습니다. 다음 날 집으로 오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딸아이가 머리핀을 할아버지 집에 두고 왔다기에 더 좋은 것을 사주겠노라고 약속을 했지요. 그런데 딸아이가 갑자기 “할아버지!” 하고 달려갔습니다.
아버지는 손녀딸의 머리핀 하나를 가지고 십 분이 넘는 거리를 뛰어오셨던 것입니다. 그래도 난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눈길도 주지 않고 버스에 올랐지요. 잠시 후 딸아이가 훌쩍 훌쩍 눈물을 흘리고 있기에 이유를 물었지요.
할아버지가 너무 너무 늙어서 불쌍하다면서 흘리는 딸아이의 눈물에 난 잠시 멍해 아득한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을 느끼면서 가슴속에서 부터 쏟아 오르는 그어떤 응어리......
어젯밤 당신의 눈물......
내 마음이 너무 차갑고 빙하 같기에 딸아이의 눈물로 나를 녹여 주시는 구나. 마음을 여는 순간 그동안 긴 어둠 속에 갇혀 있다가 아주 작은 개똥벌레 불빛보다 더 작은 불빛하나로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그 동안 당신의 모습을 당신의 사랑을 애써 외면했던 내 모습이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당신은 그저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든든한 받침목이였고 내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등대의 불빛이었던 것입니다.
이제야 고백합니다. 제 못난 모습을 사랑하는 딸아이의 눈물로 깨달았지만 이제 정말로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직도 선뜻 손을 내밀어 잡지는 못하지만 가슴으로 당신에게 용서를 빕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