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충격
김홍춘(편집국장)
1996-07-06 보은신문
사실 언론인에게 강한 직업윤리가 요구되는 까닭은 직업의 특수성 때문이다. 어떤 전문직이든 지키고 실천해야 할 직업윤리가 있기 마련이다. 언론인에 있어 직업윤리란 공공의 이익에 충실하고, 정의를 위해 어떤 상황에도 타협하지 않는 용기와 절제를 필요로 하는 행동체제와 가치다.
거기에는 높은 품위와 긍지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미국의 Chicago Tribune지와 Newsweek는 한국언론인들이 촌지를 좋아하고, 촌지는 또다른 언론통제 수단이라면서 비아양 거린적이 있다. 그러나 예로 수사비리가 공개되자 언론은 일제히 정치인을 질타하고 관련공직자를 매도하는데 열을 올렸다. 이른바, 政, 00의 유착이라고 경쟁적으로 나섰다.
마치 언론만은 예외인양 다루었다. 사회적 부조리의 만연은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부도덕이나 잘못돈 행동양식엔 눈을 감아 버리는 2중기준을 버젓이 드러냈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 언론계에 오랜 관행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언론의 사명이 권력과 금권에 의하여 흔들린다면 언론의 존재의의를 어디서 찾겠는가?
언론의 비판, 감시기능이 금력에 중독되어 무련해지는 곳에서 사회가 부패하고 권력의 횡포가 싹튼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책임 없는 보도와 상업성에 치우치는 그런 언론인은 사회를 정화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해독으로 작용하고 만다.
韓 사건도 언론들이 한보의 로비에 의하여 놀아난 경우가 되겠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해당부서 출입기자단은 물론 간부들에게까지 돈이 뿌려졌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언론사에 통보했으나 자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의 유명한 언론은 자체적으로 윤리강령을 만들어 강력하게 실천하고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다. 정중히 촌지를 거부하는 방송국의 젊은 기자를 보면서 금력에 좌우되지 않는 언론인상 만들기에 언론인 모두가 나서야 함을 생각케했다.
<데스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