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환과 고난의 삶을 살아온
최점이 할머니
1990-12-29 보은신문
최점이 할머니의 고된 삶은 평범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아서, 각박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가슴을 맑은 샘물처럼 청아하게 적셔준다. 14세의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서, 결혼생활 채 10년도 되기전에 남편 김삼문씨는 사고로 다리를 절게되고 그나마 6.25사변으로 보국대에 끌려갔다온 후부터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더니 급기야는 생활무능력자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입에 풀칠이나마 할 수 있게 해줬던 몇 평 안되는 땅 마지기마저 탕진하고, 아들 두형제와 함께 4식구가 몸을 누일 수 있었던 오두막집까지 빚쟁이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살길이 막막해지자, 정신이상으로 한번 집을 나가면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남편과 헤어져, 굶주려 하는 두아들과 함께 고향을 떠나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던 최할머니가 겪은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고생으로 점철된 32년이 흐르고, 지난 89년 최할머니는 아들들을 통해 중품으로 쓰러져 병원에 누워있는 김삼문(74) 할아버지와 실로 오랜만에 상봉하게 되었다. 정신이상으로 쓰레기장을 뒤지며 동냥으로 살아오던 김삼문 할아버지가 거동조차 못하는 신세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농사를 지으며 처가살이를 하는 큰아들과 서울 단칸셋방에서 근근히 살아나가는 둘째아들이 서로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나섰지만 두아들의 어려운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최할머니는 이를 극구 만류, 남은 여생을 김삼문 할아버지를 돌보며 보내기로 작정하였다. 그로부터 1년여 화자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정성을 다해 주변을 돌보며 지금에 이른 최할머니는 넉넉치 못한 살림형편에도 불구하고 두아들이 조금씩 보내오는 쌀과 생활비를 금쪽같이 아껴쓰며 유난히 춥고 기나긴 겨울을 보낸다.
'가난' 이라는 평생의 멍에를 쓰고 오늘도 옛남편의 베게를 바로잡아 주는 최할머니의 고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삼문 할아버지는 멍한 눈길을 보내기만 할 뿐이다. "남은 여생을 거동못하는 옛남편을 돌보며, 자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게 보내는 것으로 삶에 만족을 느낌다"는 최할머니의 말에서 '열녀'니 '장한 어머니'니 하고 평하기에 앞서 숭고한 생의 일면에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