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조와 연
김건식(삼년산 동호회장)
1996-03-09 보은신문
하나, 둘,… 섣달이 짙어감에 따라 동네 하늘에는 갖가지 모양과 색깔에 꼭지연부터 반달연, 방패연, 가오리연에 이르는 연들이 두둥실 떠올라 장관을 이루었다. 호호 입김으로 언 손을 녹이면서 추위를 잊은 채 얼레 들고 신나게 달리던 동구밖길. 곤두박질하는 연만 바라보고 달리다 물 논에 빠져 검정무명바지 흠뻑 적시고도 좋아라 뛰어 놀았다. 누구의 연이 가장 멀리 그리고 높이 오르는가? 마치 자신이 높이 뜬 연에 앉아 하계를 내려다 보는 듯 착각 속에 신명나던 옛날이 아련하기에 겨울이 오면 하늘을 바라 본다.
연날리기의 피크는 깸치먹이였다. 연줄에 부레나 풀 끓인 물에 사깃가루나 유리가루를 타서 서슬이 일도록 가미를 먹인 뒤 상대방 연줄을 끊어 먹을 때 그 통쾌한 스릴을 무엇에 비길까? 한달 가까이 날리던 연은 정월 대보름날이면 반드시 날려 보내야 한다. 연에다액(厄)자 하나 쓰고 얼레에 감겨 있던 실을 모두 풀고는 끊으면 연은 바람 따라 그해의 모든 재앙을 싣고 멀리 멀리 사라져 갔다. 작년 섣달에도 연 날리는 철이었건만 연은 날지 않았다.
청소년들이 따조놀이에 팔려 있기 때문이다. 따조란 청소년 사이에 널리 유행하고 있는 사행성 놀이기구로, 군내 유명 제과회사에서 생산 판매하고 있는 스넥류과자 봉지에 한개씩 들어 있는 원형의 프라스틱으로된 얇은 판으로 딱지치기, 돌리기 등 놀이감으로 인기가 높다. 더욱 놀라운 것은 따조를 많이 갖기 위하여 "따조 따먹기"놀이가 한창이다. 안그래도 지금 우리 아이들 주위 환경은 온갖 못된 것들만 득실거려 키우기가 난감한 시절이다.
학교앞 문방구나 학용품 가게엔 '또뽑기', '즉석복권' 등 사행심과 요행심만을 부추기는 세상인데 굴지의 제과 회사가 국정불명의 따조를 만들어 철부지 아이들을 꼬드겨 호기심을 북돋우고 천진한 마음을 멍들게 하고 있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지금 우리는 청소년을 주위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유해업소 단속과 폭력을 추방하자는 운동을 경향 각지에서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유해업소나 폭력은 모두가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당국의 지속적인 단속이 따른다면 머지않아 뿌리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천진무구한 청소년들의 정신을 멍들게 하는 사행심과 요행심을 부추기는 놀이문화를 바로잡지 않고는 아이들을 바르게 키울 수 없는 것이다. 주위 정화와 더불어 호연지기를 심어 주었던 전통의 우리 민속놀이를 전수하고 시대감각에 알맞는 새로운 놀이문화를 창조하여 청소년들의 심성을 바로 잡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주는 것도 아울러 추진하여야 할 과제임을 알고 실천하여야 한다. 음력 섣달이 되면 보청천 하늘에 높이 올라간 연을 보고 싶다.
<생각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