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제
상태바
조신제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16.10.06 14: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달리도 가뭄이 심한 한해였다. 바다같이 넓은 비룡저수지도 상당히 넓은 면적에서 바닥이 드러났고 물에 빠져있던 산종아리까지 벗겨져 내려와 희멀건 토양이 드러났다. 게다가 무더위마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금년은 참 힘든 여름이었다. 그러나 도가 차면 변화가 있는 법이다. 늦게 온 태풍이 몰아온 비가 더위를 식혀주더니 어느새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면서 온 들판이 황금빛으로 변했다. 이제 곧 조선 왕조시대 주요 진상품이었던 보은 대추가 익어가는 시기에 때맞추어 대추축제도 열릴 것이다. 그 축제를 알리는 의식이 바로 대추나무를 다스리는 조신(棗神)에게 올리는 조신제(棗神祭)다. 조신제는 대추축제의 시작을 고하는 고유제(告由祭)에 해당한다.
그러나 작년 이전까지만 해도 고유제 같은 행사는 없었다. 아무도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다. 축제라니까 멋모르고 그저 좋아서 떠들고 법석대기만 하는 어린이날 같았다. 풍성한 수확을 준 대추신에게 감사할 줄도 몰랐고 댕스기빙(thanksgiving) 의식도 없었다. 또 그럴만한 노조목(老棗木)도 찾지를 못해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 이유는 굳건한 전통의 발판도 없이 공중에 뜬 사람은 부력을 잃으면 무거운 머리로부터 땅으로 추락하고 마는 법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수령 수백년의 조목(棗木)이 나타나 읍내 중심부인 벳들공원 광장으로 이식을 하고 정성들여 살피니 파릇파릇한 잎새를 돋아내어 신목(神木)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작년에 그 첫 조신제를 올렸던 것이다.
‘보은대추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올리는 ‘조신제’는 국가제례 소사(小祀)의 예에 의해서 지내게 된다. 조선조 국가제례는 그 중요성과 규모에 따라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로 구분하였다. 대사는 종묘제례와 사직제를, 중사는 풍(風), 운(雲), 뇌(雷), 우(雨), 악(嶽), 해(海), 독(瀆), 선농(先農), 선잠(先蠶) 등을, 그리고 소사는 영성(靈星), 노인성(老人星), 마조(馬祖), 명산(名山), 대천(大川) 등을 제사대상으로 하고 있다.
대추신목에 지내는 제사는 당산제로 성황신에게 올리는 성황제의 일종이다. 고려때 불교의식인 수륙재(水陸齋)가 조선 초기에는 유교식 여제(?祭)로 변하게 된다. 성황신은 고을의 최고신이며 중국 천자는 성황신에게 관할 구역 내에 있는 여귀(?鬼)들을 모두 모아 오도록 명령하고 여단에서 신하를 보내서 제사를 지내게 했다. 여귀란 억울하게 죽은 무사귀신(無祀鬼神), 즉, 제사를 받지 못하는 뭇 귀신들을 말한다.
조신제의 의식은 국가제례인지라 보은지역의 향교식 제사나 민간제사와는 절차와 방식이 좀 다르다. 우선 제례에 참여하는 헌관, 집사, 찬의등 참사자들이 모두 관원들로서 관복을 입고 제사에 임하게 된다. 지방 향교제사는 삼헌관만 관복을 입고 나머지 집사들은 하얀 도포를 입고 있어서 색깔이 혼란스럽고 조화되지 않은 면이 있다. 배례법도 국가제례는 “국궁사배”를 하게 되는데 배례자세가 향교와 약간 다르다. 음복례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따라서 작년에 처음 조신제를 모실 때에는 지방에서 향교식 제례만 접해본 집사들이 국가제례 형식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약간의 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 2년째를 맞은 금년 제사는 모든 제관들이 좀더 숙련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은 틀림없다.
전통은 하늘에서 거저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통은 그 시원이 있고 그것이 한 지방의, 혹은 한 집안의 관습으로 세대를 이어 지켜올 때 전통이 되는 것이다. 보은 대추가 국가적,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려면 부단한 품질향상 노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축재행사의 의미부여를 위해서도 축제전 조신제는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종교적 차원을 떠나서 우리 민속의 하나로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