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113)-삼승면 천남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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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113)-삼승면 천남2리
  • 송진선
  • 승인 2007.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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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이하 젊은 층 많아 마을 활기
과연 60세 이하 50대를 젊은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학생인구와 3, 40대 샐러리맨 또는 자영업자가 많은 도시가 아니고 농촌에서 50대는 청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정하고 있는 노인인구의 기준인 65세도 사실은 초고령사회인 보은에서만큼은 젊은 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역에 젊은이가 많은 것과 노인인구가 많은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젊은이가 많으면 지역이 활기차고 노인인구가 많으면 아무래도 생기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삼승면 천남2리는 젊은 층이 많으니까 마을에 생기가 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 뒷산인 삼승 산의 산봉우리가 뿔이 난 것처럼 생겨 각골 이라 불렀다는 천남2리는 현재 67가구 15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면 이중 60세 이하 젊은 층이 90여명, 60세 이상이 60여명으로 60세 이하가 훨씬 많다.

또 이농현상이 심화되기 전인 70년대 마을은 85가구까지 번성하다 지금 67가구로 18가구가 줄었으나 3, 40%까지 가구 수가 줄고 심지어는 6, 70%까지 줄어든 것에 비하면 천남2리는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

진주 강씨 집성촌인 천남2리 주민들은 강병재(55) 이장과 한명식(74) 노인회장, 정근영(51) 새마을지도자, 이광분(55) 부녀회장, 강병호(59) 청년회장을 중심으로 화합하면서 살기좋은 마을을 일구고 있다.

단일민족이 옛말이 됐듯이 이 마을에도 외국인 여성 2명이 시집와 자식을 놓고 3대 가정을 이루고 있다. 강춘구(65)씨는 베트남 출신 며느리를 봐 손녀 2명을 안겨 줘 강춘구씨 부부와 아들 병찬씨 부부 그리고 손녀까지 3대가 한 가정을 일구고 있다.

또 강성복(79)씨도 태국 출신 며느리를 얻어 아들 강응구씨와의 사이에 손자 1명을 낳아 역시 3대가 함께 사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 젊은이들은 농한기 없어
마을 취재를 위해 경로당을 들렀다. 남자 어르신들은 경로당 주위에 있던 썩은 감나무 가지를 자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땔감으로 가져가겠다는 한 노인회원을 위해 모두가 나서서 가지를 토막 내 경운기에 실었다.

아마도 그 나무를 가져간 분은 얼마간 방 아랫목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을 것이다. 겨울철 아랫목에 이불을 깔아놓고 그 안에 밥공기를 묻어두었던 것이며 학교를 갔다온 손자손녀들의 언 손을 녹여주기 위해 할머니가 아랫목 이불 속에 손자손녀들의 손을 넣어주던 일, 겨울 밤 위쪽에 놓았던 화롯불도 그려진다.

어르신들에게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니 아침밥 먹고 10시면 경로당에 나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장기도 두고 낮잠을 즐기기도 하고 그러다 입이 심심하면 술 한 잔씩 나눠 마신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마을 최고령자인 강경옥(강병순씨 부친) 할아버지는 경로당에도 나오지 않고 젊은 사람 못지않는 근력을 갖고 있어 지금도 직접 농사를 짓는다고 어르신들이 자랑했다.

요즘도 아직 수확이 미처 끝나지 않은 서리태(검은 콩의 한 종류)를 수확하기 위해 리어커를 끌고 밭으로 나갔다고 한다. 가을이면 나무에까지 올라가 감을 따는 것은 보통이고 소도 한 마리 먹여 축분으로 거름을 만들고 고추농사, 마늘농사를 지어 자녀들에게 준다고 한다. 분명히 일을 놓을 연령이지만 고된 몸이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여 자식들에게 농작물을 보내주는 할아버지 같은 우리네 부모님의 사랑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젊은이들은 농한기가 따로 없이 요즘도 과수원에서 내년 더 좋은 사과재배를 위해 일을 한다고 한다.

거름도 주고 지주목도 세우고 맛있는 사과를 생산하는 묘목을 심느라 아침 일찍 들에 나가면 어두워야 들어온다고 한다. 품질이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삼승사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짐작이 간다.

# 사과가 주 작목
현재 사과농사를 많이 짓지만 벼농사와 사과, 한우 낙농 등 복합영농을 하는 천남2리도 옛날 주민 대다수가 담배농사를 지었다. 사과고을로 알려져 있는데 담배농사라니 상상이 안 가지만 지금도 1농가가 담배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담배 골 사이사이에 콩이나 깨 등 후작까지도 재배해 그야말로 2모작 농사였기 때문에 농사만 잘 지으면 걱정 없이 큰돈을 만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천남 2리에서 사과농사 선구자는 강병일(52) 부친인 강재구(81)씨이다. 70년대 삼승면에 처음 사과가 들어왔을 때 강재구씨도 사과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당시 다른 농가에서는 담배농사에 보리 심고 밀 심을 줄만 알았다. 강재구씨가 같은 농토에 사과농사를 지을 때 사과를 심을 머리를 안 썼다고 한다.

지금보다 품질이 좋지도 않고 크기도 작았지만 사과가 귀한 탓에 설과 추석 명절, 제사 때 아니면 아예 구경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소비량은 많지 않았지만 가격이 비쌌다. 당연히 사과농사를 짓는 사람은 많은 돈을 만질 수가 있었다.

포장도 엉성해 나무 궤짝에 왕겨(주민들은 왱기라고 했다)를 넣고 그 위에 사과를 한 채 놓고 다시 그 위에 왕겨를 넣은 후 사과를 넣는 방법으로 포장이 이뤄졌다.

지금과 같이 사과를 상자 째 구입해 먹지 못했으므로 사과를 궤짝 째 구입하지 않았으니 구경한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사과가 돈이 되니까 그 다음 강병용씨와 강병오씨가 재배했고 80년대 들어서 면적이 크게 늘어나 지금은 20농가까지 확대됐다.

가구 당 평균 2천 평정도 사과 과수원을 하고 사과로 연간 3천만 원의 조 수입을 올린다. 사과를 재배하는 주민들은 3천만 원 번다고 해야 농약 값 제하고 인건비 제하고 포장재, 은박 필름 등 농자재 값으로 1천만 원도 더 빠져나가 실제 사과농사로 큰돈을 벌 것이라는 추측과는 달리 손에 쥐는 돈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진다고 했다.

또 3농가가 낙농을 하고 4농가는 사과 농사도 하면서 소규모로 한우도 사육하고 있는데 평균 10마리 이상 된다.

한우 값이 떨어지긴 했어도 소 값이 좋은 것 아니냐고 했더니 주민들은 사료 값이 많이 오르고 대신 소 값은 떨어졌으니까 역시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 쌀도 돈주고 사먹는 꼴
사과농사도 그렇고 한우도 그렇고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것처럼 벼농사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집집마다 벼농사는 안 짓는 농가가 없는데 옛날처럼 사람이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농사를 짓기 때문에 사실은 벼농사는 자경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돈을 주고 쌀을 사먹는 꼴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봄에 논을 갈아 로터리를 치고 모를 심고 한 두 번 도열병 등의 약을 한 후 가을에 물을 떼 벼를 베는데 사람 손이 하는 것은 벼를 심은 후 물꼬를 보고 농약 칠 때 농약 줄잡고, 마지막 벼 베기 얼마 전 콤바인이 닿기 힘들고 콤바인이 돌기 쉽도록 가장자리의 벼 포기 일부를 베는 것이 고작이다.

농사의 대부분을 기계에 의존한다. 그런데 기름 값이 오르지 않을 때는 그래도 돈을 주고 쌀을 사먹는다는 말이 나오지는 않았는데 계속 기름 값이 올라 영농과정의 대부분을 기계에 의존하는 데다 고령화로 농기계를 갖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의탁해야 하니 논농사야말로 절대로 타산이 맞지 않는 농사라는 것.

그래도 고령이라 농사를 놓아야 하는 연령이고 또 수지도 맞지 않아 그만 접어야 하지만 벼농사를 놓을 수는 없어 논농사에 미련을 갖는다.

# 출향인들의 고향 사랑
출향인들에게 고향은 어머니 품 같은 곳일 게다. 고향에 남아있는 일가 친척이 없어도 가보고 싶은 곳 언제든 가면 산천이 반겨주고 그곳에 살고 있는 누구든지 반겨줄 것 같은 곳에 출향인들은 매년 사랑을 전하고 있다.

5월8일 어버이날 동네 분들을 위한 위안잔치를 개최하는 것이다.  이날 부녀회원들의 손을 빌려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하고 다 내려와 동네 분들과 이런저런 추억도 얘기하고 덩실덩실 춤도 추고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고향에 남아있는 주민들은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출향인들은 푸근한 고향의 정겨움을 가슴 가득 담아가게 된다.

삼승 산에서부터 이어지는 마을 도랑에는 옛날에 물이 많아 아낙들이 빨래도 하고 보리와 밀도 씻어 널고 나물도 씻었고 가재며 중태기 등 물고기도 많았다.

2,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상류에 가재가 산다고 한다. 하지만 가드레일을 설치하지 않아 경운기나 주민 통행에 사고 위험이 높아 보였다. 주민들의 바람이 있어서가아니라 가드레일 설치가 꼭 필요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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